• 최종편집 2024-04-29(월)
 


정재우 칼럼.JPG
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얼마 전 전남 광주의 한 미술관에서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그 전시회에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었는지 궁금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결국 가보지는 못했지만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주제가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한국 정치를 한 마디로 당쟁과 분열의 나날이라고 평한다. 왜 우리 정치인들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타협의 정치를 잘 못할까? 세계는 한국의 K-컬처에 매료되어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아마 한국 문화가 세계화된 요인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그럴 것이다.


한국 문화의 특징 중 하나를 꼽는다면 필자의 생각은 ‘다양성과 공존’이라고 본다. 한반도를 팔도로 나누어 생각해 봐도 우린 적어도 여덟 개 이상의 문화가 공존해 온 것이 아니겠는가? ‘아리랑’만 해도 그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다 아는 사실이다. 지방색이 강한 아리랑 종류는 아마 백 가지도 넘을 것 같다.


우리 문화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다양성 속에서 발전해 왔다고 본다. 국제 관계도 그랬다고 보며 국내적으로 삼국시대는 서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공존해 왔다고 본다. 나중에 비록 신라에 의해 국가는 통일이 되었으나 문화는 다양성 속에 지방별로 그 특색을 지켜왔다.


그 아름다운 유산 ‘다양성과 공존’이 지금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건 인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단일문화 시대를 넘어 이제는 다문화 시대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순혈주의나 단일 민족을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3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바탕에 깔고 현실적인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착안해 보아야 한다. 한 마디로 이민 정책을 대안으로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저출산하려는 대상자들에게 돈으로 접근하려는 정책은 이미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다. 젊은 맞벌이 부부가 바라보는 출산과 육아 환경은 좀처럼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로 치닫는 현실을 방관할 수 없다면 차선책을 궁리해야 할 것이다.


그 답은 자명하다. 유럽의 이민 정책으로 인구 감소를 극복한 나라들에서 배우고 정책을 실현해 보자. 문제는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양성과 공존’하는 사회를 준비해 이민과 다문화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세계적인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인 바츨라프 스밀의 저서 <대전환>을 보면 저자는 세계를 바꾼 다섯 가지 위대한 서사를 인구, 식량, 에너지, 경제, 환경이라고 보고 있다. 이 중에 첫 번째로 거론한 ‘인구의 대전환’에서 세계 인구의 증가율은 1960년대 후반에 감소로 이어졌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주요 지역에서 인구통계학적 전환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인구가 대도시로 몰리면서 심각한 불평등과 동시에 혁신과 번영의 중심이 되면서 이민을 끌어들이는 자석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특히 80년대 일본, 90년대 한국, 20세기 초반의 중국의 인구 증가가 전례 없는 경제성장을 가져왔으나 이후로는 삶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인구 감소로 돌아섰다고 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인구 감소를 위해 인구를 유입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이민 정책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동의와 수용할 국민 의식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도 일찍 이런 ‘다양성과 공존’을 중시하여 옥한흠 목사가 주장한 것처럼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목표로 제자 훈련을 철저히 한 교회는 현재형 부흥하는 교회가 되었다. 교회 안에 얼마나 다양한 인재와 인력이 있는가. 이를 훈련하여 그 다양성대로 자기 능력에 맞게 사역하며 공존할 줄 아는 공동체가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이다.


교회는 경직된 수직 구조의 사회에 ‘다양성과 공존’이 실현된 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다문화 시대를 앞서 살아내고 있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경직된 당회 구조나 끼리끼리 뭉치는 교회 풍토는 새 가족이 발붙이지 못한다. 그런 교회는 새 시대를 품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탈주민, 외국인이주가정은 물론 앞으로 공존해 살아가야 할 외국인까지 우리 사회는 그들을 품어 다양성을 존중하며 공존사회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가서 살고 싶은 나라, 드림을 실현해 보고 싶은 나라’라는 새로운 한류가 일어나면 좋겠다.

태그

전체댓글 0

  • 86496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정재우 칼럼] 아름다운 유산 ‘다양성과 공존’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