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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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 사교육 카르텔의 본질 톺아보기


러시아의 대문호인 안톤 체호프(1860-1904)는 “인간은 스스로 믿는 대로 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진보적 세계관을 가진 필자가 오랜만에 읽어본 그리스 신화 중 주목한 대목은 피그말리온 이야기다. 그 내용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곰곰이 헤아리니 일종의 확증 편향이 아닌 꼭 이루고 싶은 일에 대한 도전정신이었다. 그 지점을 한국 사회의 현실에 적용해 본다면 세계 최저 출산율로 인한 급속한 경기 하강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이른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까? 그에 따른 대전제는 어떠한 경우에든지 개인이나 집단이 소망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내외적으로 최적화한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요건 가운데 으뜸은 목표를 향한 진정성이요, 버금은 뒤로 물러설 줄 모르는 지속성이라고 본다. 아름다운 아내를 얻고 싶은 피그말리온의 일관된 심리상태를 두고 단지 허황한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고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이에 필자는 이미 선진국에 진입(2021년 UNCTAD: 유엔무역개발회의 발표 결과)한 대한민국의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대책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았다. 김누리 교수(중앙대)가 전한 프랑코 베라르디(이탈리아 철학자)의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은 날카롭다. 즉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 가속화’가 그것이다. 위 현안의 근저에 현행 대입제도가 도사리고 있다. 첫째, 독립적 인격체인 학생들에게 점수를 매겨 줄을 세우는 식의 선발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무한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둘째, 청소년 시절에 실패한 경험이 두고두고 낙오의 이력으로 남아있는 한 공동체를 좀먹는 개인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셋째, 어렵사리 대학을 나와 봐야 쓸만한 일자리가 없으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은커녕 생계를 걱정할 만치 삶은 초토화로 치달을 것이다. 넷째 학문의 전당마저 빨리빨리 문화에 길든 대충주의가 판을 치는 한 생활 전반의 급발진 현상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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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 부락산 문화공원 인공폭포 바위

 

이와 같은 강력한 허무주의를 극복할 대안은 없는가? 먼저 유럽의 교육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는 유연한 교육과정과 융통성 있는 입시제도, 졸업자격에 관한 학사운영의 실태를 심층적으로 파악하라고 요구한다. 우선 국립대학들이 앞장서 학과목 성적 위주의 입시 사정에서 탈피해야 한다. 수학에 남다른 재능이나 흥미가 있는 사람이 수학과에 입학하면 된다. 한 나라의 발전적 존속에 필요한 인재가 어찌 의사와 법관뿐이겠는가? 우리 몸의 장기들이 주어진 기능을 수행할 때 건강한 것처럼 대학입시 역시 더는 특정 분야로 몰리는 경쟁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상생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려서는 곤란하다. 날로 피폐화되어가는 삶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눈앞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한 채 임계점에 다다른 정신세계를 가열된 속도감에 꿰맞추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잠시 숨을 고르며 오랜 기간 약육강식을 용인하는 관습에 무감각해진 사회 전반을 돌아볼 때다. 문제해결을 위한 실마리는 생산적인 문제의식을 통해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해진 절차를 밟아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라도 개개인의 형편을 최대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를 감안한 분석적 비판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현실에 맞는 해결책을 도출한다고 해도 관건은 실천이다. 권한을 위임받은 지도자들이 그 열쇠 꾸러미를 쥐고 있다. 특권층의 기득권 포기가 결정적이로되 사회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호응할 때라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는 서로 양보할 부분도 생길 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은 물론 집단 이기주의만큼 공동체를 병들게 하는 요소는 없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혁을 요구하는 시기에는 예외 없이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결국 피그말리온의 간청을 들어준 아프로디테의 행위를 보면 구약성경의 잠언을 떠올리게 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받을 것이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잠언 8:17」). 따라서 종교나 신화의 영역을 떠나 열리는 축복의 통로는 자신이 갈망한 만큼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에 달렸다고 본다. 하지만 그간 우리 사회는 얼마나 지병에 가까운 병리 현상을 고치기 위해 몸부림을 쳤는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현재의 대입제도를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시대의 챗 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에 초점을 맞춰 과감히 혁신한다면, 잠재적 역량을 지닌 한국인은 과거 이룩한 한강의 기적을 뛰어넘어 장차 다가올 우주 시대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96호)에는 ‘몽골 초원의 재발견 - 몽골이 마주한 변화의 바람’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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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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