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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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몇 번을 되짚어도 ‘대기리’의 생애는 참 무모했어요. 그의 마음속에 과연 창조신앙이 있었는지 심히 의심하고 있다는 말이오. 그를 마지막으로 본 때는 임종을 불과 하루 앞둔 날이었어요. 보자마자 실로 충격적이었죠. 글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으니까요. 여태껏 그런 형태의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거든요. 내심 당황할 정도였어요. 줄기차게 찬송가를 틀어 놓고 앉아있더군요. 평소 좋아한 빵이며 수박을 잘랐는데 입술에 댔다가 금세 떼고 말더라니까요. 한눈에 물 한 모금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상태가 몇 달째 이어진 거처럼 보였어요. 이런저런 수식 자체가 전혀 불필요할 만치 가느다란 뼈대를 가진 새까만 인형으로 분장해 놓은 듯했어요. 외마디 말이라도 건네는 게 퍽 신기했을뿐더러 마치 연기하는 듯한 독백에 가까웠으니까요. 심각한 문제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아예 안 되어 있었다는 거예요. 코앞에 닥친 현실 인식조차 찾아볼 수 없는 황당한 모습이었죠. 그걸 보고 어찌 생에 대한 의욕이랄 수 있을까요?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거든요. 저분들이 믿는 예수님은 누구일까? 그래서 가끔 자신이 만든 신을 조종하며 살아온 건 아닌지 이따금 그들의 검은 그림자가 떠오르곤 한답니다. 대속의 은혜로 얻은 영생의 소망은 어디로 날아갔을까요?


그 부부를 닮은 ‘기어이’의 삶 역시 상당히 지저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외다. 자신의 신분이 하늘만큼 높으신 양 으스대는 몰골이거든요. 웃기는 사건이 있었죠. 카센터에서 무전취식한 얘기를 들을 때는 같은 교육자로서 수치심을 느낄 정도였어요. 차를 고쳤으면 응당 대가를 지불해야 마땅하거늘 종교인이 무슨 벼슬인가요? 심지어 강대상에서 처갓집 경조사에 봉투가 몇 개나 들어왔다고 자랑을 늘어놓더이다. 그것도 제 부조금을 떼먹은 자들을 질타하면서 말이오. 그 웃픈 실화를 통해 끈질긴 죄의 생물성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은 날마다 편한 일만 골라 살아온 주제에 일말의 양심도 없이 돈 몇 푼 더 먹으려다가 지레 동티가 나고 말았던 거죠. 업무방해죄도 모자라 어린 여자애를 추행한 돌풍에 휩싸여 그야말로 치명적 곤욕을 치렀거든요. 그래도 남은 연금으로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겠으나 꼬박 사흘을 방언에 몰입해본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큰소리치던 꼴이 떠오를 때면 실로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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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나지’의 행보는 무릇 너저분하다고 볼 수 있답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의 기사를 확인하고픈 행보를 보이더군요. 아마도 사후세계를 믿지 못하는 배우자의 영향이 아닌가 했어요. 아마도 본인 생각도 그러하니 아무 거리낌 없이 남들 앞에서 털어놓았겠죠. 솔직히 다소 의외의 사건이자 사태였어요. 어쩌면 그와 어울린 ‘히하니’와 상통하는 일면이 있어 덧붙이는 말이외다. 아니 글쎄 이런 일도 있었다니까요. 선교여행을 하는 도중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존재를 정의하다가 아뿔싸, 악심을 품더라니까요? 말하자면 자기가 믿는 신이 내가 믿는 신에게 졌다는 이유로 해코지를 감행한 셈이죠. 사실 이만치 황당한 상황을 맞닥뜨리기란 정말 쉽지 않아요. 여정 내내 몸살로 죽을 지경이던 나를 그토록 미워했으니까요. 심중에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죠. 불신의 늪에서 허덕이는 자들의 모습은 놀랄 만치 빼닮았어요. 


‘호려니’의 운신을 들으면 참으로 실망스럽소이다. 그러니까 그와 나의 인연은 내 집들이였어요. 서재에 눈길이 꽂혔는지 이튿날 전화를 했더군요. 다시금 들렀고 이후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갔죠. 학사행정 전반은 물론 개념 없는 인간들을 함께 성토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교분을 키워갔어요. 주로 그가 묻고 내가 답하는 때가 많았죠. 보통 서너 시간을 넘겼고, 유선상으로도 한 시간이 짧았어요. 오죽하면 아내가 연애하느냐 놀릴 정도였다니까요. 나는 진심으로 그를 위로하곤 했어요. 혹여 따끔한 충고가 그를 아프게 할까 봐 조심스러웠거든요. 제일 힘들었을 때는 밤 열 시에 만나자고 간청해 자정이 넘어 헤어질 때였어요. 친구라고 여겼기에 잠자코 들어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화나 있으면 나는 더 화가 났어요. 그런데 그런 이심전심은 애석하게도 착각이었어요. 가시처럼 걸리는 게 딸내미의 혼사였어요. 집 나간 영적 이단아를 단죄한 일에 대해 그가 몰이해한 거죠. 알고 보니 그가 그 식장엘 갔어요. 나 같으면 벗으로서 자초지종을 물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실망스럽게도 나를 떠날 핑곗거리로 삼아버렸어요. 진정한 동무는 아니었던 겁니다. 나는 아주 오래 그의 영혼을 근심할 거예요.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94호)에는 ‘초로의 무거운 기억들 - 갑질이 상수인 사회’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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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초로의 무거운 기억들 ‘떠돌다 떠난 지인들’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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