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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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매서운 한겨울에 이어 찾아온 봄날이어서 대지에 스며든 냉기마저 아직 가시지 않았거늘 기실 아직도 곁을 떠나지 못하는 육친의 한기는 어쩔 수 없는 혈연의 징표일 터다. 얼마 전 그리고 며칠 전 손아래 핏줄 둘이서 병영으로 향하던 그 날, 우리는 그 흔해 빠진 가슴팍 한 번 제대로 비벼대지 못한 채 뻘쭘하게 헤어지고 말았지. 단 한마디 건넬 낱말조차 동나버린 채 도통 말문을 열지 못했어. 이를테면 ‘어쨌든 자네는 이제 대한민국의 어엿한 국군이라네’라든가, ‘당분간은 교정에서 즐겨온 나약한 찌꺼기들과 싸워야 할 거야’라든지, 하다못해 하루빨리 한낱 형식에 그친 충성 구호를 굳센 조국 수호의 신념으로 승화하라는 둥, 아주 근사한 아울러 퍽 약삭빠른 상황론이라도 발동해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를 과감히 떨쳐버리길 바란다는 정도의 메시지는 나왔어야 했는데 말이야. 물론 바람대로 원만한 일 처리는 어려울 테니 어차피 끌려가기 싫은 길임을 위로하는 형태로 적당히 얼버무려야 했거든! 슬그머니 자네들과 깨어진 관계를 뼈아프게 여기는 것도 실은 그래서라네.


재기발랄한 빛돌이와 똘똘이! 뒤늦게나마 이렇게라도 한번 불러보고 싶었네. 이제야 털어놓네만 나는 아우들을 무척이나 아꼈다네. 믿거나 말거나 형제라는 연줄로 만나 밤새껏 고통하면 할수록 이른 아침 거울에 비친 나의 낯빛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져 있었으니 말일세. 그도 그럴 게 자네들이 두고 간 공책을 펼칠 때면 행간에서 늘상 못다한 얘기들이 들려오는 듯했다네. 언젠가 어느 농막에 머물며 나무토막에 걸터앉아 밤 깊은 줄 모르고 나누던 우리의 젊음은 비록 유치찬란했지만 꽤나 정겨운 거였지. 치열한 대화가 차츰 열악한 가정경제로 옮겨가면서 그간의 갈등이 거대한 명제 앞에 멈춰 서버리곤 했어. 순간 공허한 위선이 얄팍한 뇌리를 배회했고, 저 멀리 흩어져있던 사료(思料)의 편린들이 하나둘 벗겨지기 시작했거든. 미처 사랑을 예비하지 못한 못난 나 자신을 모질게 질책했지. 곧바로 터뜨린 서로의 쌍방적 단죄로 인해 다들 한없이 왜소한 몰골이 되어 스스로 주눅이 들곤 했었어.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건 분명 버르장머리없는 짓이랬잖아. 매우 뿔나고 충격적인 일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에야 송두리째 잃었던, 아니 뜻도 모를 넋두리들을 목적 없이 추스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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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더 허약해진 소이(所以)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어. 서툴게 빚어낸 껄끄러운 정서라면 이건 관용을 숫제 유희 따위로 추락시킨 참이야. 차라리 정죄의 능선을 넘어선 죄악의 범주라며 격하게 흥분했거든? 일단은 그걸 “화려한 사랑의 고요한 근원에 대한 소고(小考)”라고 마감했으되 고스란히 남겨놓은 묵직한 과제였고 짙은 유산이었어. 뒤돌아보니 언뜻 혼돈과 방황의 지점이었으니 한편으론 봐줄 만한 소행이었지. 거푸 저주와 불행을 토로하던 시공에서 타협점을 찾으려 시도한 대적이었던 것 같아. 그렇게 한참 미궁을 헤매다가 급기야 언성이 높아져 한 가닥 남은 우애마저 한순간에 혼탁해진 걸 그냥 내버려 둔 거야. 우린 결국 서둘러 핏기없는 건배와 협력하고 말았지. 어리석게도 그 증거들을 깡그리 인멸해버린 거야. 설마하니 그때 우리네 근본을 사춘기처럼 세상 풍정(風情)에 구토하듯 죄다 포기한 건 아니었겠지? 아직 우리 앙상한 가슴에 고귀한 한 줄기 빛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되뇌는 말이야. 어차피 야멸찬 세파에 지쳐 세정(世井)이 메말라갈수록 외려 그 탐욕 위에 탕진할 삶을 애써 축적한다면 더는 소망은 없는 거잖아. 적어도 알면서 범하는 오만의 오차라도 최소한 줄여보자는 게 나의 지론이거든!


왜 사람들은 조건들에 얽매어 마냥 유랑을 거듭할까? 조금만 자신을 깊숙이 인식했던들 덜 중요한 요인들에 훨씬 초연할 수 있을 텐데 말야. 엽서 한 장에 녹여내는 시공은 어쩌면 가장 수더분한 현장인지도 몰라.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얼마만큼 지켜내느냐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정녕 타인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을 먹는다면 더 큰 보람과 자긍을 느낄 거야. 너무 교과서적인 전언이었다면 그대로 풋풋한 사려쯤으로 이해해 주게나. 곧 영내에서 닦은 응결된 멋을 보고 싶으이. 부디 쓰디쓴 표정에 담긴 비생산적인 언어가 아닌 서로를 껴안고 포용하는 원숙한 남성에 관해 논해보세나. 지난날 이 형이 고향에 싣고 왔던 군대 문화를 저울질하거나 지레 미숙한 육신의 산고였다며 짐짓 생색내지는 말고! 아우들아, 이제라도 우리 한번 한껏 포효하며 어둡고 궁벽진 땅 위에서 맑고 밝은 빛살을 맘껏 뿌리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92호)에는 ‘초로의 무거운 기억들 - 모종의 씁쓸한 종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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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초로의 무거운 기억들 ‘소환한 과거의 관계’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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