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1905년 9월 고종황제 내탕금 30만 환 가운데 15만 환으로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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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한성공동창고 터(2013)

 

◆ 원평동 한성공동창고 터


한성공동창고 주식회사는 1905년 9월 ‘공동창고주식회사 장정’ 이후 고종황제 내탕금 30만 환 가운데 15만 환으로 설립됐다. 회사는 창고업무와 보세창고업무, 대출업무를 담당했다. 인천과 강경에 출장소를 설치하고, 1907년 8월 1일 평택정차장(원평동 평택역 앞)에 출장소를 설치했다. 당시 대한매일신보에 평택출장소는 일반상품 보관, 보관 물품에 대한 금융, 환전 등의 영업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1912년 2월 1일 대한천일은행의 후신인 조선상업은행에 합병됐다. 조선상업은행은 1923년 원산상업은행, 1924년 조선실업은행, 1925년 대동은행, 1928년 삼남은행, 1933년 북선상업은행, 1935년 부산상업은행, 1941년 대구상공은행과 합병했다.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는 우리은행이다. 


한성공동창고 주식회사의 위치는 구 평택역전 1등 도로와 본정통이 갈라지는 사거리 모서리에 위치했다. 원평로 36번길 164 일대다.


◆ 팽성읍 노양리 수위측정소


1974년 아산만방조제가 준공되기 전 팽성읍 노양리 일대는 안성천 하류 바닷가였다. 안성천 하류는 어족자원이 풍부하고 수로 및 해로교통이 편리한 지역이었지만 해일과 수해가 빈번해 피해가 많았다. 


노양리 수위측정소는 안성천 하구 바닷물의 높이를 재기 위해 설치했다. 본래의 위치는 노양리 서북쪽 바닷가 지점에 있던 것을 1974년 아산만방조제를 준공하고 노양리 일대 바닷가가 평택호에 수몰돼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보존했다. 수위측정소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현재 목조 테크가 설치됐으며, 내부에는 자동으로 물 높이를 측정하는 계기판이 있었다. 형태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며 높이는 3m 내외, 폭 1.5m 내외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91호)에서는 ‘평택시 근대문화유산 - 원평동 평화병원 건물’이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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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원평동 한성공동창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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