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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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우리 몸은 오묘한 유기체요, 현재 건강상태에 따른 신호등이다. 과로나 나태로 인해 빚어진 적신호를 실시간 오감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생모의 생체가 원활하지 않아 태어날 때부터 유약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린 시절 구황식물이나 시래기죽으로 연명할 때가 적잖았으니 영양분은 늘 부족했으며, 유독 손발이 차가워 동상에 시달리던 가려움증도 엊그제처럼 스멀거린다. 너나없이 보릿고개를 겪을 때여서 시대적 가난을 탓할망정 그 문제를 파헤치겠다는 듯 누구를 딱히 지목할 수도 없다. 사람들이 그토록 오래 소중한 자유를 저당 잡히고서도 지긋지긋한 독재정치를 그리워하는 건 아마 그래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실은 병마라는 불청객에게도 할 말은 있을 성싶다. 그쪽에서 청했으니 방문한 길손에 지나지 않는다는 항변이렷다. 그것이 부지불식간이든 아니면 밀려든 상황을 애써 무시한 결과이든지 간에 우리네 몸은 끊임없이 더는 견디기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온다는 얘기다. 그때 중 한때를 소환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극심한 홍역을 앓았던 적이 있다. 뜬눈으로 꼬박 밤을 지새운 끝에 새벽녘에야 잠깐 눈을 붙였다 싶었는데 맥없이 실눈을 뜨니 온몸에 물집이 잡혀 있어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모양새였다. 천지사방이 열악한 때 엄마를 따라 보건소에 가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으랴. 며칠을 마치 주검처럼 누워있다가 가까스로 일어나 움직였었다. 


이러구러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주공아파트에 살면서 겪은 몸살은 좀처럼 잊을 수 없다. 추정컨대 환경호르몬이 독한 단열재로 인해 인체가 극심한 악영향을 받으며 자고 일어나기조차 곤욕스러운 일상이었다. 물론 출퇴근하는 일정이 버거웠던 건 거꾸로 주독야경을 겸하던 수학기여서 더 그랬을 테지만 돌이켜보면 복음을 깊이 깨닫지 못한 연고였다. 고로 주위에서 무늬만 기독교인을 만날 적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의 십상팔구는 동병상련의 연유다. 병영을 나오면서도 못내 아쉬웠던 건 이왕지사 치를 고생이라면 왜 적극 추억거리를 만들지 못했느냐는 안타까움이다. 성숙한 인간의 힘이란 모름지기 올챙이 적 시절을 간직할 줄 아는 기억력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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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에서 남고로 막 전근을 갔을 때 삽화 한 토막이다. 학교도서관에 머물며 마냥 심신이 풀렸던지 집에 오면 거실 소파를 벗 삼아 운동을 게을리했었다. 그러다 보니 걸터앉은 자세는 물론 비스듬히 TV 시청을 지속하는 바람에 허리에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하루는 간신히 출근한 뒤 수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급기야 구급차에 실려 가는 신세가 되었다. 고맙게도 이틀 밤을 지낸 뒤 서둘러 짐을 챙겨 빠져나올 수 있었으나 여태껏 앙금처럼 고여있는 건 칙칙한 병실에 알고 보니 밥값을 덤으로 계산하지를 않았나, 억지로 입원 날짜를 늘리려고 꼼수까지 쓰지를 않나, 딴은 지역사회에 장학금을 투여하던 병원장의 행동마저 곱게 보이질 않았다.

 

다들 기피하는 담임교사를 자처하던 시절, 연이은 야근에 기흉 비슷한 증세가 가슴 한편을 옥죄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 중독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자초한 일이었다. 다행히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전격 병실 문을 박차고 나온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우리 몸도 적색에서 청색으로 넘어갈 때 황색 신호등이 깜박인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참이다. 그렇다면 다시는 무리한 일을 일삼지 말아야 하거늘 참으로 바뀌지 않는 자체가 인간의 속성이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여전히 단순한 관성을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이쯤 되면 일대 각성이 필요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아니 대오각성이라는 사자성어를 동원한들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밖에 다른 글에서도 밝힌 바 있거니와 가볍지 않은 주제의 과제물에 주간 연재를 위해 온종일 뛰어다니다가 우습게 뵈는 등산 코스에서 탈수증세를 겪었다. 때마침 주말이어서 약사의 대처로 급한 불은 껐으나, 이는 무리수를 거듭하는 몸을 향해 던진 경고등이었다. 뒤이어 생애 처음 맞닥뜨린 구안와사는 몹시 당황한 나머지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다. 무슨 일이든지 사전에 정보를 숙지하고 차분히 병원을 찾았더라면 쓸데없는 수고를 얹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이중치료에 과다비용을 지출한 경우다. 따라서 병마라는 불청객은 늘 우리 곁에서 호시탐탐 뭇 인간을 곤욕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다만 그와 동시에 삼색등을 번갈아 바꾸며 요긴한 신호를 보내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90호)에는 ‘초로의 무거운 기억들 - 박사는 장애물 경주’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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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초로의 무거운 기억들 ‘병마는 싫은 불청객’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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