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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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최인훈(1936-2018)의 사상사가 녹아든 『광장』(1960)은 정전(정통 소설)으로써 4·19혁명을 겪으며 좌우익 이념의 폭압성을 고발한 작품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1959년 「자유문학」에서 『그레이구락부전말기』, 『라울-전』으로 천료한 바, 전자는 행동을 유보한 채 우울한 삶을 꾸려가는 청춘과 회색을 겹쳐 놓은 듯한 그림으로 작가 특유의 관념적 기법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후자는 신의 뜻을 따르는 두 사제를 통해 진리에 다가가는 두 방식, 즉 철학자의 면모를 가진 주인공 라울과 무지하지만 행동이 앞서는 바울이 대립하는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후 통역장교, 서울예대 교수를 거쳐 미국에 머무는 동안 자전적 소설 『화두』(1994)라는 화제작으로 한국 문단에 문제적 사고의 깊이를 더했다. 


1. 『광장』, 낯설고도 거대한 세계: ‘광장’은 ‘밀실’의 상대개념으로 해방 공간부터 동족상잔의 비극까지를 아우른 시간여행 속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추구한 사생결단의 철학적 세계를 그려냈으나 남북분단의 문제를 사상사적, 정신사적으로 접근한 이면에는 근현대사의 통찰은 있었을지언정 명쾌한 해답지는 없었다. 다만 그의 자전적 기행을 통해 진무한(眞無限)이 아닌 악무한(惡無限)의 실체가 드러났을 뿐이다. 인간이 지닌 한계를 몸소 체험한 주인공에게 돌아온 것은 중립국행을 빙자한 자살극이었다. 이것을 두고 어찌 개인적 의식의 발전적 과정이라고 포장할 수 있는가? 제아무리 복잡다단한 현실을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가치평가는 선이 아닌 악이요, 본질이 아닌 현상에 머물렀으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벗어나기는 버겁다. 


2. 이식된 근대 혹은 자유의 감옥: 명준이 꿈꾼 이상세계의 실상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였다. 즉 자아를 세계화한 건 교술(수필)이요, 세계를 자아화한 건 서정(시)이어서 두 갈래의 길이 자아와 세계가 대결을 벌인 서사(소설)라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제풀에 서사시적 세계의 사랑을 갈망하다가 끝내 자살로 이어지는 여로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단서가 필요해 보인다. 결국 밀실과 광장이 조화를 창출하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준에게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라는 명제는 애초부터 무리수였다. 따라서 남한 사회를 무의미한 삶의 서식처로 규정한 것이나 북한 사회에 대해 곧바로 환멸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둘 다 이식된 감옥에 불과하므로 광기의 이성이거나 이성의 광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인간은 옥죄면 옥죌수록 꿈틀거리는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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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광화문광장

 

3. 사랑, 존재증명을 위한 또 하나의 길: 이제 명준에게 남은 선택지는 낭만적 사랑뿐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도피처는 아니다. 전제가 잘못된 근거에 개인적인 차원의 혁명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둘이 아니라 수많은 여인들에게 구걸해본들 이루어질 수 없는 신파극이다. 명준이 윤애를 통해 발견한 인과율은 남녀의 황금률이 아닌 성적 폭력성이었다. 기실 거짓의 뱃살이 부풀어 오른 건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사랑은 외침으로 이루어지는 진리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것이 어찌 당에서 명령함으로 완결해낼 수 있는 과업이더냐? 모스크바를 향해 떠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마주친 건 탈출구처럼 뵈는 동란이었다. 그가 위악(僞惡)이라는 치명적 실수를 감수한 건 그래서다. 짐짓 악한 척한 게 아니라 그 자신의 기대지평이 그 불투명한 순간을 기다렸던 셈이다. 잉태한 딸의 배냇짓이 어리석은 생부모의 죽음으로 끝날 줄이야!


4. 회색인의 진실 혹은 『광장』의 리얼리티: 『광장』은 실제 제3국행을 택한 실존 인물들을 보고 쓴 소설로 알려져 있다. 최인훈은 철학도를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한국인의 내면 심리를 파헤치고자 고심했다. 한국에서는 더이상 밀실과 광장의 조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유다. 우리가 『광장』이라는 성채에서 엿들은 한마디는 “미친 믿음이 무섭다면, 숫제 믿음조차 없는 것은 허망하다.”라는 독백이다. 명준은 자신의 기획으로 고유한 영혼을 인정받고 싶었고, 그것이 통하는 사회를 열망했건만 그에게 돌아온 채찍은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의식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철퇴였다. 제아무리 보편적 이성을 외쳐보아도 나타난 행동만이 진실이라는 고정관념은 절대적 가치로 이미 똬리를 틀었기 때문이다. 회색인에게는 진실이 사라진 지 오래다. 뼈아픈 남북분단은 역사철학적 의식의 결핍이 빚어낸 이념의 양극화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89호)에는 ‘초로의 무거운 기억들 - 병마는 싫은 불청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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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최인훈을 광장에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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