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왜구가 흥양에 침입하자 군사 이끌고 손죽도에서 싸우다 전사

 

평택시사.png

▲ 이대원 묘역

 

◆ 이대원(李大源)의 묘(소재지: 포승읍 희곡리 산83-5)


이대원(1566~1587)의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호연(浩然)이다. 1583년(선조 16)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역임하였고, 전라도 녹도(鹿島) 만호(萬戶)가 되었다. 1587년(선조 20) 남해안에 왜구가 출몰하자 그들을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이후 왜구가 흥양(興陽)에 다시 침입하자 군사 100여 명을 이끌고 손죽도(巽竹島)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속저고리에 피로 써 보낸 절명시 28자를 받아 고향 대덕산 밑에 장사를 지냈고, 제일(祭日)은 말이 혈서의 속적삼을 물고 온 날인 2월 20일로 정해 제향한다. 


임진왜란 6년째인 정유년에 왜군이 전라도 손죽도에 몰려와 이장군의 사당에 불을 지르자 갑자기 소나기가 와서 불이 꺼졌기에, 나라에서 소나기 ‘확’ 자를 써서 ‘확충사’라고 사액이 내려졌다고 한다. 


1675년 사당 입구에 신도비가 만들어졌다. 신도비는 높이가 300cm이며, 비신은 220cm, 너비 85cm, 두께 40cm이고 대리석이다. 대좌에는 물결무늬가 조각돼 있고, 글씨는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비문은 남구만이 찬하고 김진규가 전액했고 조상우가 글씨를 썼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82호)에서는 ‘평택시 각 지역 묘역 - 원균(元均)의 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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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조선 선조 충신 이대원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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