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9(수)
 

병자호란 때 척화파로서 청나라에 끌려가 뜻 굽히지 않고 죽임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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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한 묘역

 

홍익한(洪翼漢)의 묘(소재지: 평택시 팽성읍 본정리 322)


홍익한(1586~1637)의 묘는 처형 장소나 매장처가 확실치 않아, 그가 평소 타던 안마와 의금만을 수습해 함정리(옛 경정리)에 장사지냈다. 일제가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1942년 본정리 꽃산에 묘만 이장했고 묘비·비석들은 그대로 버려져 있다가 1964년 현재의 위치로 비각을 옮겼다. 1982년 비각 전부를 꽃산의 홍학사묘 옆에 옮겨 놓았다.


홍익한은 초명은 홍습(洪霫), 자는 백승(伯升), 호는 화포(花浦운옹(雲翁),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찬성(贊成) 홍숙(洪淑)의 현손(玄孫), 진사 홍이성(洪以成)의 아들로 백부인 교위(校尉) 홍대성(洪大成)에게 입양된 후 서울 마포에서 자랐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봉림대군·윤집·오달제와 함께 척화파로서 청나라에 끌려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죽임을 당한 병자(丙子) 삼학사(三學士)’의 한사람이다.


묘소 앞에는 묘표와 문인석 2기가 있고, 묘역 전면에는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포의각이 있다. 홍익한 묘표는 2기가 있는데, 현재 묘소 앞에 세워진 것은 1689(숙종 15)에 만들어진 것으로 월두형 비신양식이다. 규모는 비신 48.5×17×127cm이고, 비대는 87×57×29cm로 외증손 심사성이 글을 쓴 것이다.


포의각 내에 있는 묘표는 비신이 54×21.5×124cm, 비대는 106×82×24cm, 옥개석은 104×79×39cm1831(순조 31) 이의현이 찬한 것이다.


홍익한 묘갈은 1725(영조 1)에 포의사가 전결을 획급 받을 때 1726(영조 2) 건립한 것이다. 비문은 송시열이 찬하고, 민진원이 전액하고, 이의현이 쓴 것으로 글씨가 마멸돼 내용을 알기는 어렵다. 비문의 23행 중 왼쪽 모서리가 깨어져 1행은 소멸됐다. 규모는 비신이 54.5×29×125cm이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다음호(681)에서는 평택시 각 지역 묘역 - 이대원(李大源)의 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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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병자 삼학사 홍익한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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