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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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Ph.D.

혹자는 ‘두브로브니크’를 제쳐 두고는 크로아티아를 보았노라 입을 떼지 말라고 단속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무심코 방심하다가 일이 우습게 꼬여버린 사례에 속할 법하다. 일정을 무료하게 만든 건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풍경 사진을 찍다가 뭘 잘못 만졌는지 모바일의 배터리가 조기 마감되어버린 낭패를 당한 참. 따라서 잔뜩 기대를 안고 찾은 두브로브니크에 관해서는 풀어낼 얘깃거리가 빈곤하다. 그래도 한마디로 줄이라면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그렇대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핀잔은 아니다. 그나마 초기에 십수 방 담아놓지 않았더라면 아예 인증할 소일거리조차 마련하지 못할뻔했다. 게다가 그날따라 ‘보라’로 알려진 바람은 대형 태풍급. 간간이 흩뿌리는 빗방울을 탓할 여지도 없다. 터무니없이 입장료를 올린 성벽 걷기마저 제풀에 포기하고 말았으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세 단락의 내용을 무엇으로 채울 셈인가? 이를테면 이번 회차의 기행은 여정은 있되 견문과 감상의 영역이 역으로 사실관계를 추적하는 녹화를 뜰 수밖에 없겠다.


과연 사람들의 입술에 오르내리는 빈도만큼 두브로브니크는 지상 최대의 낙원일까? 맨 먼저 눈에 띄는 건 어딜 가나 랜드마크가 으뜸일 터. 16개 면에 각기 다른 조각상을 새긴 오노프리오스 분수대를 감상하며 올려다보는 시계탑이 그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인과 담소를 나누며 한눈을 팔아도 아무 걸릴 게 없는 플라차 대로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수로를 도로로 바꿨는데 대리석이 하얗지 않으면 어떻고 석재가 좀 거칠면 대수랴, 산책객들이 걷기에 편하면 그만이거늘 홍보 책자에 상투적으로 소개하는 글처럼 어느 건축물이든 외관을 보고서 감탄하려면 이런 유형의 건물을 생전 처음 보았거나 그 방면에 관한 배경 지식이 충분해야 한다. 가령 이곳을 수호했다는 성인의 유물을 보관한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을 비롯해 우아한 아케이드가 특징인 스폰자궁을 포함해 최고 통치자의 집무실을 두었다는 렉터 궁전이나 프란체스코수도원의 외양에 지대한 관심을 표출하는 이들은 해당 분야의 연구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사찰이나 건조물의 경우도 마찬가지. 단지 규모가 웅장하다는 연유로 찬탄을 금치 못한다면 차라리 미국의 펜타곤이며 중국의 자금성을 따라갈 수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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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플라차 대로

 

그렇다면 썩 내키지는 않더라도 주위 성벽을 한 바퀴 돌아왔어야 한다. 그런데 왠지 이들의 장삿속을 끝내 인정하기가 싫었던 거다. 세찬 바람을 피해가며 애써 골목길을 찾아 헤맨 이유였다. 돌이켜보면 뒤늦은 점심 식탁에서 가져온 물조차 마시지 말라는 눈총도 모자라 기껏 내민 음식이란 게 부실하기 짝이 없었으니 급기야는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는 사태까지 치르지 않았나? 어젯밤 기분 좋게 한턱을 쏜 박대장이 이르기를 즐거운 여행을 담보하려면 첫째가 팀복이요, 둘째는 날씨요, 유능한 가이드를 만나는 게 셋째라는 말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그러니 어쩌랴, 넉넉한 시간을 주체할 줄 몰라 이리저리 헤매는 와중에 조우한 당사자의 옷자락을 끌 수밖에. 상한 마음에 식사도 거른 채 다리 난간에서 만난 그를 모른 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한 시간 남짓 나눈 얘기는 예사로 부딪히는 애환을 풀어 대화의 용광로에 녹여버린 게 고작이었으되 직업상 난감함이 어찌 이번뿐이랴. 세상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여서 더욱 그랬다.


이제 남은 프로그램은 미니밴에 탑승하여 두브로브니크의 절경을 감상하는 일. 하지만 보라라는 놈은 보란 듯이 더 기승을 부렸다. 산정을 향해 올라가는 차량이 구부러진 비탈길에서 심하게 흔들릴 정도여서 내심 불안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아마도 좌석을 꽉 채우지 않았다면 무게중심에 이상이 생겨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불길함이 엄습했다면 지나친 호들갑일까? 사실 올라갈수록 예상치를 뛰어넘은 비바람의 강도에 자칫 온몸을 가누기조차 쉽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날마저 어두컴컴해지면서 일시에 체감온도를 떨어뜨리는 강추위까지 몰아쳤다면 스르지산 전망대 미니밴 투어는 하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가 크게 부족했던 탓이리라. 돌이켜보면 절벽 아래 그림 같은 마을을 배경으로 멋진 추억을 남기는 건 고사하고 자세를 한껏 낮춰 흐릿한 풍경을 흘끔 보는 것으로 족할 수밖에 없었고 팀원 전체가 무탈하게 내려온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티 나는 옥에 티라고 규정하는 일마저 극구 신중할 필요가 있으렷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퇴임 후 기고활동을 이어가면서 기독교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을 운영합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4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81호)에는 ‘발칸반도 주마간산기 - 몬테네그로: 페라스트와 코토르 성내’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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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는 녹화 중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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