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농성, 구릉의 경사지 이용해 고려시대 해안 방어 위한 토축의 평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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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

 

평택서남부지역의 성들은 옛 폐현(廢縣)과 관련돼 축성됐거나, 조운(漕運)로의 확보를 위해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안정리 농성(農城)은 평택현의 읍성, 덕목리 광덕현성은 동, 서로 2개의 성이 마주 보고 축조됐는데, 덕목리는 고려 초 수주부의 광덕현의 치소(治所)로 광덕현 읍성(邑城)이었을 것이다. 포승읍 원정리 목장성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포승면 홍원리와 원정리에 설치된 목장의 말과 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목장이 확대되면서 석정리 감기마을에서 성해리까지 쌓았다.


◆ 농성(소재지: 팽성읍 안정리 산41-5, 지정번호: 경기도기념물 제74호)


안정리 농성(農城)은 ‘이성(夷城)’, ‘이성(里城)’이라고 부르며, 구릉의 경사지를 이용해 고려시대 해안 방어를 위해 축조한 토축의 평지성이다. 평면 형태는 남북 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장방형을 하고 있다. 


성벽은 전체 길이가 305m로 동벽 93m, 서벽 85m, 남벽 56m, 북벽은 71m이다. 성벽의 높이는 동벽과 북벽이 8~10m로 높고, 남, 서쪽은 6~8m로 다소 낮다. 내벽 높이는 3~4m 정도이고 상단 높이 1.5m~2m 하단너비가 4~7m 정도이다. 성내 면적은 14,900㎡이며, 문지는 동벽과 서벽 중간부에 위치하며 크기는 상단 너비 8~10m 하단너비 2m 내외이다. 높이는 4~5m가량이다.


축성 시기는 삼국시대, 나말여초, 고려설 또는 임진왜란설 등 많은 이견(異見)이 있다. 성곽 축조 방법이 고려 때 만들어진 덕목리성, 처인성 등과 유사하며 출토유물들이 고려시대 것이 많다. 이성(夷城)이라는 명칭으로 보아 『고려사』에 고려 1377년(우왕 3) 왜적이 경양을 침범하고, 평택을 점령해 양광도 부원수 인해가 이기지 못했던 기록이 있어 고려 말에 축조 활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78호)에서는 ‘평택서남부지역의 성곽 유적 - 덕목리성’이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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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 평택서남부지역의 성곽 유적’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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