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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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최근에 방영된 두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감상 소감을 나누고자 한다. 두 작품 모두 청소년기를 공유한 친구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인이 되기까지 겪은 젊은 날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드라마는 친구 간에 복수극을 그렸고 영화는 아름다운 우정을 그렸다. 드라마는 학폭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립각으로 보여주었고 영화는 서로를 닮아가고 배려하고 용서하는 걸 보여주었다. 결말도 다르게 종결을 맺는다. 드라마는 처참한 폐해를 드러내고, 영화는 아름다운 영광으로 물들인다. 


두 작품을 접하는 시청자는 전혀 다른 감정에 사로잡힌다. 복수극은 통쾌함과 동시에 정서적 불편함을 주었고 영화는 애잔함과 동시에 평온함을 주었다. 드라마는 인간의 잔악함을, 영화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안겨 주었다. 두 작품 모두 서로 다른 인간성을 리얼하게 표현한 점은 스토리와 연출의 탁월함이라 본다. 인간관계의 가능성과 피폐함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수작들이다. 


이제 두 작품의 제목을 짐작해보자. 드라마는 발표 후 실시간 세계 최대 시청 시간 기록을 경신하며 며칠째 방영한 모든 나라 차트 순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더 글로리’이다. 영화는 며칠 전 극장에서 개봉한 ‘소울메이트’이다. 당분간 반응을 지켜보아야 한다. 많은 영화마니아들이 극장으로 달려가게 되리라 기대된다. 


두 작품을 대하면서 한 편으로는 인간성에 대한 회의감을,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숨길 수 없는 진정한 사랑과 우정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워 줌을 느꼈다. ‘더 글로리’는 스토리 내용과는 반어적 기법으로 제목을, ‘소울메이트’는 친밀한 깊은 관계를 묘사하는 직설적인 기법으로 제목을 정했다.


두 작품 리뷰를 간결하게 표현한다면 우려스러움과 다행스러움이다. 복수극이 불러오는 통쾌함은 잠깐 동안이었고 이런 상황 속에 살아간다는 불안함이 더 오랫동안 밀려왔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내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아직 희망을 가지는 것은 젊은 날의 순수한 우정이었다. 이런 청순한 우정이 꽃피우고 열매 맺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하리라는 마음이 생겼다.


필자는 ‘더 글로리’가 주는 영광보다 폐해를 우려스럽게 생각하며 고민해 보았다. 먼저 드라마 내내 내 귀를 거북하게 한 것은 욕이었다. 욕설 문화가 만연된 까닭일까? 사악함을 묘사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장치인가? 가해자는 가진 자의 갑질을 포기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갈수록 더 잔혹하게. 그뿐이 아니다. 선을 넘어서는 방종으로 치닫는다.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잊어버린 폐허가 된 인간 심성을 보여준다. 생명을 표적으로 복수극을 펼친다. 마치 추락하는 짐승의 시간을 본다.


학폭이 가져오는 사회적 폐해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가해자 편에 서 있는 사회적 구조와 해결, 이로 인한 피해자의 반격은 처절하다. 오랜 시간 동안 가해자를 무너뜨릴 계획과 실행, 가해자를 공동의 적으로 설정해 협업하는 복수극이 섬찟했다. 


특히 이 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최후의 보루 중 하나인 교회를 왜곡하여 묘사한 부분이다. 과장된 신앙심 조장으로 보이는 예배 장면, 이중적인 인격을 가진 목회자 자녀의 상습적 마약 복용과 탈선, 목회자의 재정 횡령 범죄 등으로 편견을 갖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교회는 영혼의 안식처요 생명의 말씀을 공급하는 전인적 힐링 공동체이다.


문화의 핵과 같은 역할을 하는 드라마와 영화는 종합예술이자 그 문화의 반영이다. 좋은 드라마와 영화는 좋은 문화를 생성한다. 하지만 도덕률과 상식을 파괴하는 작품은 해악을 가져온다. 건전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도 건전하면 좋겠다. 자극적인 내용은 더 자극적인 것만 불러올 뿐이다.


<나니아 연대기>를 저술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시인, 비평가, 영문학자인 C. S. 루이스(1898~1963년)는 그의 저서 <인간 폐지>에서 “도덕률 없이는 사회의 악이 억제되거나 순화되지 못하고, 악에서 악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바른 의식을 상실한 충동적 인간으로 이루어진 욕구 만족형 사회는 지옥 그 자체이다”라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경고를 겸허하게 숙고해 볼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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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영광과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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