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배다리마을숲의 소나무·전나무·리기다소나무·서양측백나무 겨울에도 푸른 잎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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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 소장

그 어느 해보다도 매서운 한파가 잦았던 겨울이 조금씩 물러가고 있다. 좀작살나무의 보랏빛 열매에 반했지만 이내 팥배나무와 꽃사과나무의 열매로 장소를 옮기더니 지금은 아그배나무와 회화나무의 열매에 뻔질나게 찾아드는 직박구리 무리가 있다면 곤줄박이는 바나나 모양을 한 벌레혹(충영) 외에는 먹을만한 열매가 없어서인지 때죽나무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주어 올리는 횟수가 점차 늘고 있다. 새는 새 나름의, 곤충은 곤충 나름의 방식대로 겨울을 나고 있는 이즈음에 나무는 어떻게 겨울을 나고 있을까?


◆ 배다리마을숲 수목의 다양한 겨울나기


배다리마을숲과 산책로를 따라가면 겨울이라고는 해도 푸른 잎을 지닌 친구들이 있다. 키가 작고 줄기 밑에서 많은 줄기가 갈라져 우산 모양으로 자라는 반송으로부터 소나무, 전나무, 리기다소나무, 서양측백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에 이르기까지 상록성 나무들은 주변 낙엽성 나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면서 황량한 겨울의 삭막함을 초록으로 달래준다. 바늘잎이 2개씩 뭉쳐나는 소나무와 3개씩 뭉쳐나는 리기다소나무, 5개씩 뭉쳐나는 스트로브잣나무의 경우 늘 푸른 잎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고 2년이 지나면 밑부분의 묵은 바늘잎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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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봄 눈비늘조각을 벗은 갯버들 수꽃(2008.3.1)

 

겨울은 숲에서 온전히 나무만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울창한 숲에 가려졌던 나무들을 속속들이 볼 수 있고 잎이 떨어진 나무의 수형과 높은 가지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천천히 즐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겨울에 잎을 떨구지 않는 무리가 있어 관찰하는 이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배다리생태공원에서 묵은 잎을 떨구지 않고 겨울을 나는 친구는 대왕참나무를 선두로 상수리나무와 밤나무가 있고 더러는 붉은병꽃나무와 흰말채나무 일부도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인지 묵은 잎 외투를 벗지 못하고 있다. 가을에 단풍이 들고 잎이 떨어지는 원리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연결하는 통로에 ‘떨켜층’이라는 차단막을 만들어 영양과 수분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 동안 나무 속 영양분을 지키게 되는데, 본래 아열대성 식물이었던 대왕참나무와 상수리나무 같은 참나뭇과 식물들은 이 떨켜층이 발달하지 않아 한겨울의 잎이 갈색으로 변해도 가지에 붙어있다가 겨울철 강한 찬 바람이 불어서야 나뭇가지로부터 조금씩 떨어져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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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눈의 눈비늘조각을 벗고 잎을 내는 노각나무(2014.3.29)

 

◆ 겨울나무의 겨울눈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정온동물이나 바깥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과는 달리 나무는 나무 나름의 겨울나기를 한다. 겨울나무를 이해하고 구별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다가올 봄을 위해 준비해 둔 겨울눈이다. 매서운 추위를 견뎌 봄을 기다리는 나무의 최고 목표는 겨울눈이며, 겨울눈을 따뜻하게 지키는 것이다.


평택시 비전동 덕동산에 둘러싸인 명법사 화단의 동백나무는 큼직한 동글이 겨울눈을, 죽백동 배다리생태공원 산책로의 백목련은 기름하면서도 도톰한 겨울눈을 지니고 있는데, 추운 겨울에 혹 잎이 되고 꽃이 되어야 하는 겨울눈이 마르거나 얼지 않게 하려고 여러 겹의 비늘 옷을 입거나 솜털로 덮인 털옷을 걸치고 있다. 이때 겨울눈을 감싸고 있는 외투를 눈비늘조각(芽鱗)이라 하며, 눈비늘조각의 모양과 종류 그리고 개수는 나무에 따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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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비늘조각을 벗고 동글한 꽃눈을 터트린 산수유나무(2022.4.1)

 

특히 가로수나 정원수로 많이 심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칠엽수는 겹겹이 싸여있는 눈비늘조각만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아 그 바깥면에 끈적거리는 나뭇진을 묻혀 이중 삼중으로 겨울눈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건 모든 나무의 겨울눈이 잎이나 꽃이 될 어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비늘처럼 생긴 조각으로 둘러싸여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곤줄박이가 집착하는 쪽동백나무와 직박구리가 큰 무리를 지어 열매를 찾는 작살나무의 겨울눈은 맨눈(裸芽)이라 하여 눈비늘조각이 없다. 효율적인 면에서 물론이거니와 생물다양성이란 큰 틀에서 보면 겨울눈 또한 예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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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비늘조각이 없는 작살나무의 맨눈(2008.2.21)

 

◆ 나무의 겨울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겨울눈은 나무마다 단풍이 들고 잎이 다 떨어진 후에야 비로소 눈에 띄기 시작하지만, 겨울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식물의 잎이 떨어지기 전인 여름에, 가장 생명력이 왕성한 시기에 이미 만들어지는 것이다. 특히 개나리는 5월에 양분이 많을 때 미리 겨울눈을 만들어 둔다. 나름의 생활사를 철저히 계획하고 관리하는 나무들이기에 닥쳐올 변화와 위기에 대한 준비 또한 미루지 않고 겨울눈을 준비하는 것이다. 희망을 품은 겨울나무들의 겨울눈이 들려주는 소박한 지혜인 것이다. 사람의 생김새와 성격이 모두 똑같지 않음처럼 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의 겨울눈 또한 같지 않지만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마음가짐만큼은 누구나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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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산근린공원 묵은잎을 달고 있는 상수리나무(2022.1.13)

 

매 순간 식물에게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특히 겨울눈을 지닌 시기는 더더욱 그렇다. 겨울나무를 통해 만나는 겨울눈은 그 크기는 작고 보잘것없어도 들여다볼수록 아름답고 신비롭다. 크다고 해도 엄지손가락의 손톱만큼이지만 섬세하면서 화려하고 넓은 세상을 포함하고 있다. 모란, 백목련, 칠엽수, 개나리, 가죽나무, 왕벚나무, 좀작살나무 등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겨울나무와 겨울눈이지만 작은 것에서 아름다운 생명과 함께 겨울나무의 넓은 세상을 접할 기회를 봄이 오기 전 가져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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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동·식물의 겨울 이야기 ‘나무의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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