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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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하지만 가난에 찌든 형편인지라 문방사우(文房四友)는커녕 밥상 겸 책상마저 변변히 없어 마음 놓고 공부할 여건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불철주야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에서 그의 밝은 앞날을 엿볼 수 있었다. 당차게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자태나 멀리 청나라를 향해 방랑의 길을 떠나면서도 동행한 김형진의 면면을 알아보는 눈썰미는 남달랐다. 나중에 그를 긴히 쓰려는 안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한치의 소홀함도 없었다. 일제 군사 밀정의 만행을 보다못해 왜놈을 과감히 처단한 일이며, 이로 인한 옥살이 중에도 자신을 끊임없이 가꾸고 단련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직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아 민족을 살리는 데 이바지할 자기의 몫을 찾는 일에 일로매진하였다. 그 가운데 단연 으뜸은 독서삼매경에 빠져 사는 모습이었다. 다독과 다상량(多商量)이야말로 좋은 글쓰기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그러니 사형집행을 앞두고도 그처럼 태연자약할 수 있었던 것이요, 고종임금으로부터 극적으로 은전을 입고 탈옥한 뒤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제 갈 길을 걸어갈 수 있었으리라.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경술국치를 당한 그날, 선생은 왜놈의 제나라 위하는 모양을 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진다. 어쩔 수 없는 중과부적으로 국토는 빼앗겼으나 우리 겨레붙이만은 아직 건재하다는 피맺힌 역설이었다. 이 부분이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말았다. 제아무리 되뇌어본들 이만한 순수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나라의 운명을 비장한 틈바구니에 묶어놓고 최후의 순간까지, “비록 너희가 나의 목숨은 빼앗을지언정 결코 나의 정신만은 빼앗지 못하리라.”라는 외침을 들었던 참이다. 무릇 감동이란 변함없는 본질에서 오는 법이다. 화려한 현상이 아닌 주위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올곧은 요소라야 사람을 일어서도록 힘을 북돋우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그도 인간인지라 너무나도 고통스런 옥고를 이기지 못한 채, 차라리 ‘젊은 아내가 몸이라도 팔아 내 옥바라지를 해주었으면!’하고 바랐다는 대목에 가서는 솔직히 나 또한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과연 그러할까?” 나는 이 독백을 그의 전연 때 묻지 않은 속내를 훔쳐본 것에 족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튼 그에게는 결코 순탄한 시절은 없었으나 그것이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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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덕신도시로 진입하는 길목

 

백범이 품었던 생각처럼 “일본은 한국을 오래 제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일본의 운수는 길지 못하리라.”라는 확신이 살아있는 한, 일제 치하 35년 내내 우리는 나라 잃은 설움을 딛고 언젠가는 기필코 우리의 강토를 회복시키고야 말겠다는 소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를 담보해 준 분이 그의 어머니였다. 강인한 모성에서만 나올 수 있는 훌륭한 아들의 면모는 철저한 가정교육과 조국을 향한 헌신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에 비해 처복은 없는 편이었다. 그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먼저 간 아내를 떠나보내며 한 여인의 남편을 뛰어넘어 온 겨레의 지도자가 되었음을 감지해야 했다. 자신의 생일을 아예 기념하지 않겠다는 결단이 거기서 나왔다. 나라를 잃고 유리걸식하며 굶주림에 허덕이는 동포가 부지기수인 마당에 생일상 차림이란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인간이란 스스로 낮아질 때 남들로부터 높임을 받는 것이라는 원리가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실제 김구가 지니고 있는 덕목 중 가장 큰 항목은 겸손이었다. 이는 그가 경무국장으로 발탁될 때와 국무령으로 추대될 때 밝게 빛났다. 주어진 권위에 의지하여 남보란 듯 위세를 떨칠 수도 있었으나, 냉큼 자신의 자리를 주석(主席)이라 개정하여 합의제의 의장으로서 족하며 대화합을 시도한 터였다. 그는 곧이어 의사 이봉창을 통하여 일왕을 없애려는 계획을 실행으로 옮긴다. 그 정신력 속에 내재한 강인함이 지칠 줄 모르는 힘의 원천이 되어 광복군을 창설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을 앞두었으나 바로 그 시점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패전을 앞둔 일본군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뜻하지 않은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어엿한 독립 국가의 미천한 문지기가 될지언정 한겨레의 종이 되기에 주저치 않겠다던 의기가 한순간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요원한 조국 통일에 그분의 의분과 애국심이 자못 그리운 시점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64호)에는 ‘미완의 거인을 기리며 - 김구가 소유한 특장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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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미완의 거인을 기리며 ‘일제 강점기의 치욕사’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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