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항곶포, 1970년 전후까지 서정리장 보러 오는 사람들도 이용해

토진포, 간척이 되기 전에는 갯골이 형성되어 배가 드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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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곶포가 있었던 서탄면 황구지리 부근(2007)

 

◆ 진위천의 나루와 포구


1. 항곶포(진)


서탄면 황구지리에 있었다. 『진위현읍지』에는 황구포(黃口浦)라고 했고 ‘예전에는 항곶포(項串浦)라고 했으며, 현(縣) 서쪽 20리 지점에 있는데 수원 경계로 통한다’라고 기록했다.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항곶진(항곶포)’으로부터 비롯됐다. 진위천과 합류하는 황구지천의 본류는 수원 광교산에서 발원한다. 


그러다가 수원 시내를 관통하면서 유천과 합류하고, 다시 대황교에서 원천과 합류해 흐르다가 서탄면 내천리에서 내천이 되고, 항곶포가 있는 황구지리 부근에서 황구지천(항곶천)이 돼 진위천(장호천)과 합류한다고 해 본래 항곶포였지만 19세기 후반에 황구포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곶포는 화성시 양감면의 장안나루와 연결됐다. 1970년 전후까지만 해도 화성시 양감면 용소리 학생들이 배를 타고 건너다녔고, 서정리장을 보러 오가는 사람들도 이 나루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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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톷나루터였던 청북면 토진1리

 

2. 토진포(위치: 청북면 토진1리)


청북면 토진1리에 있었다. 톷나루·텃나루·선살미나루라고 했다. 반대편의 고덕면 동청리 동청나루와 연결됐으며, 현덕면의 신흥포나 계두진에서 수원을 거쳐 한양을 오가는 소로(小路)와 공수다리가 나루 옆에 있었다. 조선 말기 기록에 토진(土津)은 현곡리의 신포와 함께 청북면 삼계리의 ‘옹포’ 영역이었으며, 경우궁에서 포세(浦稅), 선세(船稅)를 받아 갔다. 


나루의 정확한 위치는 토진1리에서 2리로 넘어가는 구릉 건너편 토진1리 주민 김학목의 가족묘 자리에 있었다. 간척이 되기 전에는 갯골이 형성돼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근대교통로가 새로이 형성되면서 쇠퇴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63호)에서는 ‘아산만 연안과 발안천 수로의 포구’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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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지역의 나루·포구유적’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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