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신흥포, 아산만 방조제 건설 전 팽성읍 경양포와 아산 백석포 이어 

계두진, 육로로 안중 지나 수원 연결... 한양 가는 상인들 많이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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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흥포가 있었던 신왕1리(2012) 

 

◆ 안성천의 나루와 포구


1. 신흥포(新興浦, 위치: 현덕면 신왕1리)


조선시대 수원부 광덕면이었고 현재는 현덕면 신왕1리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수원부 조에 ‘당포진’으로 기록됐다. 신흥포는 광덕현에서 충청도 평택현이나 아산현으로 건너가는 창구였다. 1974년 아산만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팽성읍 노양리 경양포와 아산의 백석포로 건너가는 나루뿐 아니라 안성천 하류의 어항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 


‘수원부선세혁파성책’에 청어 1동마다 5전, 조기 1동마다 5전, 미역 1동마다 2냥, 조 1섬마다 1전, 쌀 1섬마다 2전, 대맥 1섬마다 1전, 돈 백냥을 1년 포세로 주인이 거둬갔다. 또 청어 1동마다 3냥, 조기 1동마다 2냥, 미역 1동마다 3전, 대맥 1섬마다 2전, 염 1섬마다 2전, 목화 1척마다 3냥, 창호지 1동마다 15냥, 우피 1장마다 1냥, 담배 1척마다 1냥 5전, 돈 100냥을 포세로 주인이 거둬갔는데 1886년(고종 23)부터 순화궁에서 거둬갔다는 기록이 있다. 


위의 품목을 보면 조선 말기의 신흥포는 단순히 어항이나 나루뿐 아니라 선상(船商)들에 의한 포구상업도 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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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두진이 있었던 평택호관광지 일대(2011)

 

2. 계두진(鷄頭津, 위치: 현덕면 권관리)


현덕면 권관리 노랑바위에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수원부 조에 ‘수원부에서 남쪽으로 80리(『대동지지』도 동일함)인데 아산으로 통한다’고 했다. 


조선 후기에는 아산시 인주면 공세포나 백석포에서 배를 타면 계두진에 내릴 수 있었다. 계두진에서는 육로로 안중을 지나 수원으로 연결됐기 때문에 한양으로 가는 과객들이나 상인들이 많이 이용했다. 해방 전후에는 주로 어항과 나루로 기능했지만 1974년 아산만방조제로 막힌 뒤에는 기능을 상실했다. 지금은 요트와 윈드서핑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61호)에서는 ‘진위천의 나루와 포구 - 다라고비진’이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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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지역의 나루·포구유적’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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