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이포진, 수원부에서 남쪽으로 70리... 평택으로 통한다고 기록돼

통복개, 진위현 남쪽 30리 지점... 통복천 하류에 있었던 나루

 

평택시사.png

▲ 이포진(아래소청나루)이 있었던 동고리(2006) 

 

◆ 안성천의 나루와 포구


1. 이포진(위치: 고덕면 동고1리)


이포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나온다. ‘수원부 남쪽 70리에 있으며 평택으로 통한다’고 돼 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 수원부 조에는 금물촌면에 있다고 기록됐고, 다른 읍지(邑誌)에는 평택현으로 넘어가는 나루였다고 했다.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수원부에서 남쪽으로 70리 떨어져 있으며 평택으로 통한다고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아래소청나루라고 해 국도38호를 지나 서평택으로 넘어가는 차량과 사람을 실어 날랐다. 이포진에서 배를 타면 안성천 건너 원봉나루나 곤지진, 진위천 건너 오성면 신리 삼동촌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이포진은 1930년 궁안교가 가설되고, 1938년 콘크리트 교량으로 교체되면서 역할이 줄었다가 일제 말 수로가 바뀌고 주변 지역이 간척되면서 사라졌다. 

 

평택시사2.png

▲ 통복포터로 추정되는 화촌(2011)

 

2. 통복개(포, 위치: 통복동)


통복천 하류에 있었던 나루이다. 『대동지지』에 ‘진위현 남쪽 30리 지점에 있으며, 양성 가천역 하류로 평택으로 가는 길과 통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1770년경 편찬된 『팽성지』에는 ‘평택현 관아에서 북쪽으로 8리 지점에 있는데, 진위현과 수원부로 갈라지는 경계다’라고 했다. 통복포의 위치는 통복동 화촌으로 보인다. 화촌은 1974년 이전까지만 해도 경기만의 소금과 새우젓, 굴젓이 거래되던 포구였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59호)에서는 ‘안성천의 나루와 포구 - 삽교포’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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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지역의 나루·포구유적’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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