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하양창, 주로 경기남부와 충청북부 일부 지역의 세곡 담당해

해창포, 봉남리-진위천-신장1동-당현리-좌교리 거쳐 세곡 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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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양창이 설치되었던 팽성읍 노양1리 경양포(2002)

 

◆ 고려 13조창 하양창(위치: 팽성읍 노양1리 뱃터)


고려시대 평택지역의 조창으로는 전국 13조창 중 하양창(河陽倉)이 있었다. 하양창은 팽성읍 노양1리 타이포(또는 편섭포)에 있었다. 조창이 설치된 것은 10세기 초 전국 12조창이 설치되면서다. 『고려사』에 하양창에 한척에 1,000섬을 실을 수 있는 초마선 6척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양창에서는 주로 경기남부와 충청북부 일부 지역의 세곡을 담당했다. 이곳의 세곡을 관리하고 운송하기 위해 외관록 20석을 받는 판관을 배속했고, 세곡의 징수와 관리 그리고 운송책임은 고을의 향리와 백성들로 구성된 뱃사공, 소공, 수수와 같은 조군(漕軍)들이 맡았다.


하양창의 중요성 때문에 노양리 일대를 경양현으로 승격시키고 조세운송과 염(鹽)장관을 겸하게 했다. 하양창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삼남의 해운이 끊기면서 역할이 중단됐고 조선조에는 폐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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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위현 해창이 있었던 고덕면 해창3리 창말(2007)

 

◆ 진위현의 해창(海倉) 해창포(위치: 고덕면 해창3리 창말)


해창3리 창말에 있던 진위현의 해창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해창포(海倉浦)는 현(懸) 남쪽 30리 지점에 있는데 소로(小路)가 수원과 평택 경계로 통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진위현에서는 읍치(邑治) 봉남리에서 진위천-신장1동-당현리-좌교리를 거쳐 해창포에 이르는 소로를 개설해 세곡 운송을 하게 했다. 해창 뱃터는 일제강점 초기 간척사업으로 구동안들이 조성되면서 사라졌고, 조창이 있던 곳에 뱃줄을 매던 팽나무와 창말이라는 지명이 전해온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55호)에서는 ‘직산현과 평택현의 해창(海倉) 경양포’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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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조선시대 수로 및 해로 교통유적’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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