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조선후기 진위현 지역... 냇가에 버드나무 많아 ‘버드내’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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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2동 본유천(2010)

 

◆ 유천동(柳川洞)


조선후기 진위현 병파면과 양성현 영통면 지역이었다. 1914년 상유천리·하유천리·양성군 구룡면 소사리·동역리 일부를 통합해 병남면 유천리라고 했다. 유천리라는 지명은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내’라고 했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1. 양성버드내: 유천1동의 자연마을. 1914년 이전에는 양성군에 속해 유래됐다. 삼남대로가 지나는 길목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안성천 변에서 사금을 많이 채취해 ‘사그막 동네’라고도 불렀다.

 

2. 진위버드내: 유천2동의 자연마을. 진위현에 속해 유래됐다. ‘본유천’ 또는 ‘버드내’라고도 부른다.

 

3. 직산말: 유천3동의 자연마을. 조선후기 직산현에 속해 유래됐다.

 

4. 새말: 유천3동에서 가장 큰 마을.

 

5. 황룡동: 유천3동의 자연마을.

 

6. 유천교: 국도 1호선 유천동 부근 안성천을 건너는 콘크리트 다리. ‘흰다리’라고도 불렀다.

 

7. 안터: 유천1동과 2동 사이에 있었던 마을. 버드나무가 100여 그루 있었지만 화재가 빈번하면서 폐동됐다.

 

8. 앞뜨미·뜨뜨미: 유천1동의 자연마을 이름.

 

9. 십한구덩이: 유천1동 동쪽 400m 지점에 있는 물웅덩이.

 

10. 새마답: 유천1동 하천 변의 지명. 풀과 갈대가 많아서 쇠풀을 뜯기가 좋았다.

 

11. 사천배기: 유천1동에서 2동으로 넘어 가는 굴다리 부근 지명. 커다란 말 무덤이 있었다. 청일전쟁 때 전사한 일본군 4천 1백 명의 무덤 또는 옛날 말을 타고 싸우다가 전사한 장군의 무덤이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49호)에서는 ‘평택지역 육로교통 유적’이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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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평택시 유천동’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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