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9-2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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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에덴의 실상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애석하게도 하나님께서 금하신 단 하나의 열매에 손을 대고 말았던 겁니다. 암기력이 약한 저로서는 제일 부러운 대목이 아담에게 여태껏 동식물도감을 펴낸 어느 학자보다 뛰어난 지식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각종 들짐승과 새들뿐만 아니라 식물의 이름을 단번에 지어줄 만큼 영특했으니까요. 그 뛰어난 지혜를 부어주신 분께 무한 감사하기는커녕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던 최고의 찬사마저 까맣게 잊은 채 가당치 않은 핑계를 대며 자신의 죄를 냉큼 인정하지 않았고, 재빨리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로 숨어들었던 겁니다. 세상에 이런 바보가 또 있을까요? 멍청한 인류의 조상으로 인해 다들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소 과격한 표현을 썼지만 우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우리 안에도 스스로 신이 되고 싶은 우상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극지점은 죽어서도 계속 숭배받고자 하는 영적 탐심으로 나타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이 풍진 세상에도 가녀린 소망은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똑같은 은혜를 베풀고 계시거든요. 그 힌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비록 불순종으로 인해 저주받은 땅에서 고통을 감내한 채 살아가지만 죽은 다음에는 부활한 몸을 입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잖아요. 그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에덴동산 한가운데 나란히 심은 이유였거든요. 이제 영생이냐 영벌이냐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에 달린 셈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자유의지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축복이냐고요? 따지고 보면 엄연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되는 권한을 허용하신 거잖아요. 순전히 본인의 결단으로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이거든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으니까요. 부디 한 영혼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셨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온 세상을 얻는다 한들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영생의 절대성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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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섶길

 

주목할 지점은 신구약 성경에서 숨김없이 다루고 있는 주요 인물들의 별의별 죄악상이랍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교리를 표현한 다른 종교의 경전과는 사뭇 다르거든요. 예컨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성경 말씀에서 그 인간상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굵직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훑어보면, 술에 취해 하체를 드러낸 노아로부터 사람을 죽인 모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거짓말, 사사로서 교만과 음란에 빠진 삼손, 기름 부은 왕이었으나 배교한 사울, 간통과 살인교사죄를 범한 다윗,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스데반의 순교에 가담한 바울,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른 헤롯, 세 번 그리스도를 부인한 베드로, 예수를 팔아먹은 가룟 유다에 이어 극형을 지시한 본디오 빌라도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버거울 정도니까요.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우리 죄인들에게 소망이 있다는 겁니다. 다만, 그러므로 적당히 죄를 지으며 살아도 된다는 면벌부는 아닙니다. 그만치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황 자체를 경계하라는 뜻이니까요.


그렇다면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내일을 대비해야 할까요? 에덴동산의 뼈아픈 실패담에서 그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담과 하와를 또 소환하면 늘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물론 국내외적 상황이 이른바 3고(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에 시달리는 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아무리 세상살이가 험난할지라도 한시도 영적 무장을 늦출 는 없는 거죠. 날마다 근신하지 않으면 우리를 대적하는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니니까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씀에 방점을 찍으라는 외침입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주어진 조건에 감사를 모른 채 살다가는 언제든지 사탄의 유혹에 속수무책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평소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당연히 그에 합당한 삶으로 증명해야지요. 최초의 부부가 잊고 살았던 복음을 오늘날 우리 가정에서 실천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삶의 초점을 무한한 창조세계를 향한 신앙의 순수성에 맞춰야 하는 터입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42호)에는 ‘에덴동산에 숨은 비밀 - 영원의 피안을 갈망하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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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에덴동산에 숨은 비밀 ‘인간의 내면을 주시하다’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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