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1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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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정리하면 계산상 약 9만여 평의 대지에 연면적(延面積)이 그 40%를 넘는다니 한나절 만에 샅샅이 돌아볼 수는 없었다. 응당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선인의 정신이 깃든 문화유물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다면 자주 오는 수밖에. 하긴 내게 이렇다 할 역사적 식견이랄 게 없으니 애초에 상식 수준에서 가볍게 일별해볼 심산이기는 했다. 그렇더라도 맘속 깊이 새겨둘 만한 보배가 딱히 짚이지 않아 씁쓸했다. 두리번거리던 고개를 냉큼 돌려버리기에는 뭔가 아쉬웠기에 텅 빈 공간을 채울 만한 뭔가가 절실했다. 차분히 살펴보니 눈길이 가는 게 하나 있기는 했다. 남달리 아는 바가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옛 돌탑을 볼 때면 자꾸만 시선이 머무른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잠자는 의식을 일깨우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런 소외된 지점에 입각해 전국에 난립한 군소 박물관들의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할 때라고 본다. 마치 명승지나 관광지 어디를 가나 똑같은 기념품을 닮아가서는 곤란하다는 고언이다.


육중한 덩치의 박물관을 나와 그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틈날 때마다 장외교육을 권장하는 입장에서 혹여 한둘이라도 스칠까 기대했던 제자들의 자취는 그림자조차 없었다. 바쁜 수험생들의 현주소를 애써 외면한 참이다. 그때 남산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인공호수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긴 다음 각종 석탑으로 장식한 뜰을 지나 ‘용산가족공원’을 거닐기 시작했다. 산뜻한 산책로. 푸르른 잔디가 싱그러웠다. 단 정겨운 우리 금잔디는 아니었다. 잔디가 햇살에 반짝였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원래는 미8군 골프장이었단다. 부디 인간의 발길에 사라지지 않고 잘 자라나야 할 텐데. 어쨌거나 흔치 않은 풍광. 작은 연못에 오리가 노닐고 조각품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냈다. 현장학습을 나온 유치원생들이 종달새처럼 재잘거렸다. 하지만 거대한 서울의 천만 시민들이 맘껏 쉬기엔 턱없이 비좁은 공간이다. 머잖아 주한미군 부대가 거지반 옮겨가면 그 전역을 도시공원으로 꾸민다니 기대치가 크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능가하는 자연친화형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기를 학수고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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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소재한 용산가족공원

 

둔덕에 자리한 태극기공원에 뜬금없이 초병이 서있었다. 바로 옆 담장 너머에 미군 막사가 있는 줄을 미처 몰랐던 터. 모쪼록 이 기지마저 통째로 이전한다면 서울시민을 살리는 허파의 기능은 보다 건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부부가 사는 평택지역이 주한미군의 총 집결지렷다. 대신 정부에서 특별법을 정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특별교부금으로 힘껏 달랜다고는 해도 자신이 사는 곳이 군사기지화하는 걸 달갑게 여길 시민은 드물다. 그로 인해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는 현실을 코앞에서 목도하는 자로서 민족 분단의 처지를 마냥 슬퍼할 수도 없다. 하지만 삶의 터전을 잃고 어디론가 밀려나야 하는 농민들의 처지를 보노라면 적잖이 딱하고, 신도시가 생겨 기존 도심이 정비되면 교육여건이 나아진다는 말에 뭐라고 선뜻 의견을 낼 형편도 아닌 듯하다. 이왕지사 미군 주둔이 필요악이라면 중지를 모아 풀어갈 현안이기에 뾰족한 수는 없지 싶다. 그래서일까?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이 갑자기 쌀쌀하게 다가왔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아내가 안쓰러워 일단 양지바른 곳을 찾아 나섰다. 삶은 달걀과 과일로 허기를 메우고 나니 냉기도 조금은 덜했다. 시계를 보니 다음 행선지로 향할 시각. 서둘러 일어나 발길을 재촉했다. 


종각역에서 내리니 곧바로 영풍문고. 국내 2위 업체라지만 바로 옆 교보문고에 비하면 아담한 규모다.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 잠시 둘러본 뒤 옥빛 대리석 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청계천의 풍경화가 눈앞에 펼쳐졌다. 한쪽에는 정부의 농산물 개방을 반대하는 대형버스 행렬이 세종로를 가로막아 섰다. 이름도 낯선 시점광장. 천변을 축약한 물줄기가 과거와 현재를 담아 미래를 향해 상징처럼 흐르고 있다. 비록 자연 하천은 아닐지언정 설계는 퍽 예술 지향적이다. 벽천을 타고 내리는 폭포를 따라 들뜬 기분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그간 복개한 이래 시궁창에 불과했던 걸 감안한다면 이만치 맑은 개천을 만든 것에 대해선 점수를 후히 주고 싶다. 버들강아지에 물풀이며 갈대에 담쟁이덩굴이라니 놀랍기 그지없다. 게다가 어제와 오늘을 교묘히 조합해 놓은 발상도 찬사를 베풀 만하다. 적어도 나의 첫인상은 그랬다. 예기치 않게 불거진 여러 문제점을 애써 차치하고서 청계천의 가까운 장래를 접어놓고 보자면 결단력 있는 시도로 보아도 무방할 듯해서였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37호)에는 ‘서울 나들이 - 천변을 가로지른 산책’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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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서울 나들이 ‘허파와 같은 용산공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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