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7-0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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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잠언은 하루에 한 장씩 읽으면 딱 한 달이 걸린다. 해마다 12번씩을 반복하다 보면 말씀에 인(印)이 박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말씀을 묵상하는 일 못지않게 체화(體化)하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필자의 경우 잠언 말씀을 읽고 출근하는 날이면 까다로운 일을 제법 슬기롭게 처리하여 스스로 놀랄 때가 있었다. 잠언의 영적 가치를 품고 부지불식간에 지혜로운 사람을 닮아간 터였다. 이는 나의 생생한 체험담이다. 지혜란 관념 속에 머무는 공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령의 영감으로 쓰인 어느 구절인들 허투루 지나칠 리 없겠으나 잠언이 주는 지혜가 하루 24시간을 오롯이 감싸고 돈다는 증거다. 오래전 글을 풀어가는 작법(作法)을 가르치며 대뜸 잠언 읽기를 추천한 제자가 떠오른다. 그 속에 오묘한 진리가 숨어 있으니 깊이 깨달으리라고 확신했다. 들리는 만큼 말문이 터지는 어법처럼 읽히는 만큼 필력이 샘솟는 바는 순적하다. 유태인들의 지혜문학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지적 자산인 셈이다.


우리 민족 역시 많은 속담과 금기담(禁忌談) 같은 비유를 통해 격조 높은 격언이나 금언을 적잖이 갖게 되었다. 간결한 관용구를 구사해 다양한 사실관계를 풍자나 교훈으로 넌지시 이르집는 지혜를 일상에서 배우는 기회다. 나아가 촌철살인(寸鐵殺人)을 연상할 만치 사물의 요긴한 데를 겨누어 듣는 사람을 감동하게 만드는 구실까지 엿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우리 속담에서 조물주의 존재가 흐릿하다는 점은 심히 안타까운 대목이다. 애초에 신인식(神認識) 자체가 없었던 게 아니고 원래는 있었는데 유사 이래 수많은 자료나 증거들이 거의 전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놀랄 만한 지점도 있다. 기독교 재단의 각급 학교에서 사용하는 종교 교과서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었다. 이미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 중에 불국사 근처에서 십자가상이 출토되었다는 전언이다. 그것이 왜 국사편찬위원회의 소수 의견에 그쳐 한국사의 중대사로 인정받지 못했는지 의아스럽고 아쉽다. 앞으로 더욱 철저한 검증을 거쳐 종교 전래사의 하나로 자리를 잡기를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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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의 내용은 히브리 청소년들을 훈계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근면과 정직을 필두로 효도와 신의를 비롯해 경건, 소망, 사랑, 그리고 믿음 등을 가르친다. 그 정점은 슬기롭게 삶을 경영하는 데 있다. 그 구절들을 일일이 들출 수는 없더라도 곳곳에서 인간 본연의 미덕이 묻어나는 건 동서고금의 공통점이다. 이는 부모로서 자식을 훈계하는 일침들이 추상같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통상적인 철학서와는 접근법부터 다르다. 단순한 예절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근본을 파헤치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잠언 1:2~5)라고 규정하고 있다. 잠언 1장 7절을 통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라고 단정한 것은 전체 말씀에 대한 대전제에 해당한다.


잠언을 관통하는 수사법은 시종일관 대조법이다. 훈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의인이요, 계명에 거역하는 자는 악인이라는 프레임(frame)을 주저 없이 선포하고 있다.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라는 말씀(잠언 2:10)과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 네 길을 지도하신다는 언약(잠언 3:6)과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언 4:27)는 충고 등이 그것이다. 음란을 경계한 비유는 감탄을 자아낸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잠언 5:15, 5:18) 음녀에 관한 구절은 줄줄이 나온다. 곧바로 6장부터 뒤쪽 여러 장(11, 20, 22, 27장)에서 보증에 대해 훈계한 점은 단연 압권이다. 필자는 특히 8장 36절에 주목한다.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공들여 9장부터 언급하는 화두는 거만한 자를 향한 화살이다. 10장의 주제는 게으름과 부지런이다. 11장에서는 속이는 저울추와 공평한 눈금을 보는 잣대에 과녁을 겨누고 있다.


잠언의 전개는 선행자와 행악자의 궁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15장 1절의 권고는 금과옥조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16장 1~2절은 이를 뒷받침한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응당 악인과 선인의 보응은 오롯이 주권자의 영역이다. 18장 22절은 유독 눈길을 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술꾼들을 압도하는 구절은 여럿이다.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잠언 23:20),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잠언 23:29~30) 잠언 전체를 요약하면 크게 권선징악, 신상필벌, 사필귀정의 주제 아래 생명에 관한 정답을 실시간으로 제시하고 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24호)에는 ‘지혜문학과 떠난 자유여행 - 욥이 뛰어넘은 시험’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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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지혜문학과 떠난 자유여행 ‘잠언은 일용할 양식’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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