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7-0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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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그로부터 칠 년 후, 드디어 독립된 서재가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잘 나가는 가게처럼 신장개업한 서가는 명실공히 나의 지식을 쌓고 다듬는 공간으로 터를 잡았다. 주거환경으로서는 목이 좋다는 곳으로 이주한 뒤 한없는 감사로 젖어 있던 그때 에벤에셀의 주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신학을 공부하도록 인도하셨다. 책장이 두둑해지며 영적 허기를 느끼기 시작한 지점이었다. 때가 차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께서 부족한 부분을 돌아보게 하셨다. 막상 신학의 문에 들어서니 거대한 학문의 성채였다. 세상의 어떤 학문도 신학 앞에서는 한없이 왜소해질 수밖에 없을 만큼 드높아 보였다. 학기에 학기를 더하며 위를 올려다보니 바라볼수록 높다란 장벽을 실감해야 했다. 그래서 아덴의 고대 철인 중에는 철학을 일컬어 ‘신학의 시녀’라고까지 고백하지 않았던가. 세기의 석학들이 제아무리 인문학을 거론하며 이른바 문사철(文史哲)을 들먹여도 신구약 성경을 능가하지 못한다. 아니 인간적으로 탁월할수록 감히 범접하지 못할 창조 사역의 비밀이 녹아있기에 그렇다. 유한한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계시(啓示)의 기원을 전지전능한 신께서 몸소 열어주신 참이다.


신학의 길은 멀고 험했다. 아직은 일천한 배경지식 탓에 제대로 된 신학 논문 한 편을 완벽히 소화해내는 데도 남모를 시련이 따랐지만, 바지런히 이 책 저 책을 들추며 기웃거려보는 특유의 버릇만은 여전했다. 춘부장의 서가를 정리하는 동료 교사에게서 관련 서적을 트렁크에 가득 실어온 적도 있었다. 이러구러 첫해와 이듬해 수집한 신학 서적이 기대치를 넘어 칠백여 권에 달했으니, 모두가 예수님의 놀라운 은총이 아니면 무엇이랴. 이 또한 남들이 보기에는 책에 대한 과욕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라서 퍽 조심스럽기는 해도 뒤돌아보면 나는 세간에서 평가하는 책 수집상은 될지 몰라도 훌륭한 장서가의 자격은 갖추지 못한 게 확실하다. 여하튼 대강 정돈하여 세어본 총 장서 수는 어림잡아도 삼천오백 권을 훌쩍 넘긴 듯했다. 웬만한 동네 서점에 온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떠는 제자들을 보낸 뒤 사뭇 흐뭇해하던 연초의 기억이 뇌리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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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에 꽂힌 책들은 그렇게 긁어모은 거였다. 얼마 전에는 새로운 장서수집의 대원칙도 수립했다. 앞으로 몇 년간은 더 이상 숫자를 늘리지 않고 불필요하다고 확신하는 책들과 신간들이라도 과감히 정리해 나갈 결심을 굳힌 것이다. 어떻게 모은 책들인데 단 한 권인들 집 밖으로 내치듯 떠나보내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신중히 솎아낸 책들은 그냥 내다 버리는 게 아니라 필요한 곳을 찾아갈 것이므로 안심해도 된다. 이윽고 눈에 비친 나의 서가는 내심 새로운 모습으로 정화를 바라고 있다는 걸 스스로 눈치챈 소이(所以)였다. 그 원칙에 따라 여태껏 수거한 책들이 줄잡아 오백여 권은 족히 되지 싶다. 그간 서재 한쪽에서 밀려난 책들은 다른 방으로 배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츰 방바닥까지 잠식해 오는 걸 본 다음에는 결정을 더는 미루기 어려웠다. 향후에는 더 엄선해서 살 책을 고르고 손에 쥔 책은 반드시 읽고 소화하는 데 집중할 요량이다. 두고두고 참고할 게 아니면 곁에 남겨두는 데 치중하지 않고 남들에게 선물하든지 기부하는 일에도 눈을 돌릴 생각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서재에 걸맞은 이름을 짓는 일이다. 길게 고심할 것도 없이 나의 아호처럼 대나무를 닮겠다는 뜻에서 <죽향재>(竹向在)라고 붙였다. 대쪽 같은 성품을 본받는 존재로 우뚝 서고 싶어서다. 내 깜냥은 모자랄지언정 자신을 비운 채 하늘로 곧게 뻗어 올라간 자태를 지향할 참이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처음 이사 와서 우리 네 식구는 오붓이 서재에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어언 아들딸이 장성해서 가정을 이루고부터는 아내와 단둘이 식탁에서 경배를 드리게 되었다. 서재가 다시금 신령한 처소로서 의미를 되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감지해낸 터였다. 총 삼천여 권의 책들 가운데 채 삼 할도 안 되는 구백여 권만을 겨우 읽어낸 참기 어려운 지성적 가벼움을 영적으로 숙성시켜 나갈 계획을 세운 것이다. 서재를 번듯하게 겉으로 꾸미고 가꾸는 데서 벗어나 마냥 책을 향한 사모의 정만을 앞세우지는 않으리라. 그리하여 허기진 육신을 요기하는 서고가 아니라 영혼 구원에 필수적인 믿음의 양식을 공급하리라. 그렇게 영적 내실을 다질 때 참 신앙의 풍요를 누리며 내게 주어진 지복(至福)을 향유할 수 있으리라.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3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22호)에는 ‘지혜문학과 떠난 자유여행 - 슬기로운 자의 행보’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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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죽향재(竹向在)’의 주인의식 ‘신령한 처소를 찾아’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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