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진리, 조선시대 수원군 토진면... 1914년 고좌리 통합
한산리, 1914년 판교동·강포리·수북면 한산리·서신리 통합
▲ 근대전후 토진나루였던 토진1리 톷나루(2008)
◆ 청북읍(靑北邑) 토진리(土津里)
조선시대 수원군 토진면 지역이다. 1914년 토진리·고좌리 일부지역을 통합해 토진리라 했다. 토진은 나루의 한자지명이다.
1. 원토진(元土津): 토진1리의 자연지명. 본래는 ‘돛나루’였다.
2. 고좌(高座): 토진2리의 마을. 침식작용으로 마을에 피해가 많아 높은 지대로 옮겨 살면서 유래됐다. ‘고재’, ‘고자’, ‘높은자리’라고도 한다.
3. 국길(國吉): 토진3리의 자연마을. 본래 ‘귀락’, ‘국길실말’을 줄여서 ‘국길’이라고 했다.
4. 가재울: 국길 동북쪽의 마을.
▲ 너더리장이 섰던 한산3리 너더리(2006)
◆ 청북읍 한산리(閑山里)
조선시대 양성현에 속했다가 갑오개혁 뒤 수원군 토진면과 수북면으로 편제됐다. 1914년 판교동·강포리·한산리·수북면 한산리·서신리를 통합해 한산리라 했다.
1. 원한산(元閑山): 한산1리의 자연마을이다.
2. 수부(壽富): 한산2리의 자연마을. ‘숫뿌리’의 한자지명이다.
3. 망포(網浦): 한산3리의 자연지명. 바닷물이 들어오던 포구였다. ‘망개울’이라고도 한다.
4. 방죽거리: 한산3리의 자연마을. 방죽이 있었다.
5. 판교(板橋): 수원으로 가는 큰길에 하천을 건너는 널다리가 있어 ‘널다리’, ‘너더리’라 부르던 것이 한자로 ‘판교’가 됐다. 너더리에는 주막과 장시가 열렸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20호)에서는 ‘평택시 청북읍 현곡리(玄谷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