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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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척박한 가정에서 자란 소년에게도 꿈은 있었다. 어중간한 시골구석에서 태어난 탓에 세련된 문화적 혜택은커녕 문명의 이기라고는 아예 구경조차 못한 채 자라났어도 유난히 책 모으는 욕심 하나만큼은 남다른 데가 있어 가당찮게 나의 서재를 갖고 싶었다. 아늑하고 조촐한 나만의 공간을 꿈꾼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키운 가문이 대대로 서책을 쌓아놓고 사는 뼈대 있는 선비 집안이라거나 동양화 같은 산천경개의 가시권에서 뛰어놀다가 자연스레 생긴 고상한 취향은 더욱 아니었다. 그저 책같이 생긴 물건이면 옆에 두기를 좋아했고, 책장을 넘길 때 풍기는 탕내가 싫지 않아 생겨난 취미였다. 어린 마음에도 책들을 책꽂이에 꽂아 놓기만 하면 꽤 아는 게 많아질 것 같은 주제넘은 생각이 자주 들곤 해서였다. 그러니까 고매한 지적 대물림이랄 것까지는 아니로되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심리적 영향권이라면 그리 크지 않은 동네에 서당을 열어 간신히 호구(糊口)하시던 할아버지의 가르침과 맞닿아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로 인해 한자 글씨체가 훌륭하고 평생 성경책을 가까이하신 아버지 밑에서 보고 배운 점이 이어받은 삶의 여건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부친은 이웃들로부터 가방끈에 비해 한자 실력이 있다는 평을 들으셨다. 고된 들일을 마치면 안방 벽이나 마루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손가락과 발을 움직여 늘 글씨 쓰는 연습을 즐겨 하셨다. 그 모습을 접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우리 중학교 한문 선생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곤 했다. 어쨌든 그럭저럭 선대로부터 대물림한 크고 작은 옥편이며, 굵은 실로 엮어 만든 누런 서책 수십 권이 내가 꿈꾸던 서재의 시초였다. 거기에 해마다 몇 권씩 보태는 거라고 해봐야 교실에서 사용한 교과서에다 가물에 콩 나듯 사보는 책들 몇 권이 거지반이었고, 교회에서 단체로 구입한 낡은 성경책이랑 어린이 찬송가 두어 권이 내가 소유한 책자의 전부였다. 보시다시피 서책을 사서 모으기에는 참으로 미약한 출발이었거니와 뜻하지 않은 곳이나 친인척에게 선물 받은 책을 집으로 가져올 때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기분 좋은 눈총을 심심찮게 받곤 했다. 오로지 마음속에 간직한 서가를 향한 한 가닥 소망만이 내가 지닌 환경적 불완전 요소의 돌파구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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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농의 맏이로 태어나 엄격한 기독교 율법으로 양육되고, 방과 후면 농사일 거들기에 바빴던 나의 어린 시절은 꼭 하고 싶은 말조차 입 밖에 꺼내지 못하고 살았기에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도심과 떨어진 읍내의 변두리 초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중학교에 입학한 나는 수업을 마치면 어김없이 호미를 들고 밭으로 향해야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십리 길을 오가는 것도 무척 고단했지만, 마치 숙명처럼 받아들인 밭일은 언제나 피하기 어려운 과업이었다. 차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귀가하는 시간을 늦추는 바람에 심하게 혼쭐이 나기는 했어도 여전히 밤늦도록 거드는 일손만은 내게는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어려워지는 각 과목 교과서들의 내용이었다. 그 진도를 따라가기도 벅찬 마당에 갈수록 노동의 강도마저 세지다 보니 도저히 감당해내기 어려웠다. 본격적인 공부의 맛을 미처 들이기도 전에 찾아온 때 이른 사춘기는 지레 지친 나의 심신을 사정없이 엄습해버린 터였다. 온갖 사물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가슴과 뇌리는 충만했건만 나만의 시간과 자유를 달라고 애원할 용기도 없이 무성한 풀 섶에서 풀이 죽어지내던 나날이었다.


그렇게 잔뜩 주눅이 들어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당시로서는 흔치 않던 월부책 장수를 김매던 중에 마주쳤다. 서산에 해가 반쯤 걸린 밭이랑 사이에서 어머니에게 말을 건네던 사람이 있었다. 삼십대 중반쯤으로 뵈는 호리호리한 남자의 장광설을 엿들어본즉, 자녀를 위해서 '세계문학전집'을 꼭 사줘야 한다는 아주 애절하고 집요한 판촉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밭 한가운데 엎드려 있는 게 왠지 창피스럽게 느껴져 고개를 푹 수그리고 개미처럼 일만 하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불쑥 모기 만한 소리로, “야, 저것 좀 사봤으면 좋겠다!”라며 전에 없던 속내를 드러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냥 별로 기대하지 않은 채 지나가는 말처럼 던져본 말에 어머니는 대뜸, “그거 얼마래요?”라고 하시며, 무려 50권이나 되는 책 상자 3개를 선뜻 인수하는 것이었다. 이게 정말 꿈은 아니겠지? 나는 그때의 놀람과 설렘을 아직도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2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18호)에는 ‘죽향재(竹向在)의 주인의식 - 손에 들어온 전집류’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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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죽향재(竹向在)’의 주인의식 ‘수줍게 들춰낸 편력’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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