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백봉리, 근대전후 수원군 수북면... 1914년 백봉·조염동 통합

삼계리, 조선시대 양성현 감미동면... 1914년 독개와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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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실이라고 부르는 백봉2리 벽동(2008)

 

◆ 청북읍(靑北邑) 백봉리(栢峰里)


근대전후 수원군 수북면 지역이다. 1914년 백봉·조염동·벽동·평촌을 통합해 백봉리로 했다.


1. 백봉: 백봉1리의 자연지명. 본래 조선 태조 때 왕자의 난으로 피신한 여섯 왕자가 숨었던 곳이라고 해서 ‘육자지’라고 했는데, 형제들이 피신한 곳을 알게 된 이방원이 왕자들을 찾아내 죽이면서 오뉴월 삼복더위인데도 눈이 내려 산을 하얗게 덮었다고 해 그 뒤 ‘백봉(白峰)’으로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 있다.

 

2. 벽동(璧洞): 백봉2리의 자연지명. 본래 ‘두팽이’ 또는 옛 마을이라는 뜻에서 ‘구실’이라고 했던 것이 ‘구슬’이 됐고 이것을 한자로 ‘벽동’이라고 했다.

 

3. 벌말: 구슬에서 안탑모퉁이 방향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 순흥 안씨들이 많이 거주했다.

 

4. 도렴동·평촌: 백봉리의 자연마을. 진위천의 침식작용으로 폐동됐다.

 

5. 백봉산: 본래 육자지산으로도 부르다가 나중에 백봉산이 됐다. 산성이 축성됐으며 3·1운동 당시 안화리의 안육만 등이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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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양성현의 해창이었던 삼계2리 옹포(2008)

 

◆ 청북읍 삼계리(三溪里)


조선시대 양성현 감미동면 지역이다. 1914년 독개를 통합할 때 마을 앞 하천이 삼합류하는 곳이라고 해서 삼계리라 했다.


1. 원삼계(元三溪): 삼계1리의 자연마을. 윗말과 아랫말로 구분된다.

 

2. 옹포(瓮浦): 삼계2리의 자연지명. 조선시대 양성현의 해창이며 조선후기에는 포구상업이 크게 발달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동척농장의 곡식들과 공출미가 반출됐던 곳이다.

 

3. 신촌(新村): 삼계3리의 자연지명. 1882년경 마을이 형성되면서 ‘분말’로 부르다가 1939년 원삼계 마을과 나뉘면서 ‘신촌(새말)’이라고 했다.

 

4. 월곡(月谷): 삼계4리의 자연지명. 달처럼 타원형의 계곡이라고 해서 ‘달마골’ 또는 ‘월곡’이라고 했다.

 

5. 신영촌: 삼계 5리의 자연지명. 한국전쟁 뒤 이북 피난민들이 정착해 형성됐다.

 

6. 성곡(城谷): 마을이 산성山城의 골짜기에 위치해 유래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7호)에서는 ‘평택시 청북읍 어소리(魚沼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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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청북읍 백봉리·삼계리’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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