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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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이번에는 지난날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털어놓을까 합니다. 자연스레 ‘하인리히 법칙’을 들먹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 재앙을 당하기 전에 작은 사고와 조짐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주장입니다. 1명의 사상자가 나올 경우, 그 전에 경상자가 29명 발생한 다음 비슷한 문제로 다칠 뻔한 사람이 300명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비율을 그대로 적용해 ‘1:29:300 법칙’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1931년 당시 미국 여행보험사의 손실통제 부서에 근무하던 하인리히(H. W. Heinrich)는 산업 재해 사례들을 분석하던 중 일정한 흐름을 발견했다는군요. 그가 쓴 <산업 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을 통해 처음 알려졌는데요, 어떤 재해든지 우연히 생기는 게 아니라 반드시 이전에 여러 번에 걸쳐 사람들 앞에 경고등이 켜진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제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개인사 역시 섭리하시기 때문이죠. 알고 보면 우리가 겪는 일은 죄다 개개인의 자유의지로 빚어낸 결과물이니까요. 크고 작은 일들이 죄다 나의 철없는 소행이었거든요. 제아무리 핑계를 끌어온들 언제나 내 소견대로 행하였고 끝내 고집을 피우며 되먹지 않은 결정을 내렸으니까요. 설령 어떤 손해에 누군가가 개입한 흔적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건 늘 쓴 충고를 안 받아들인 어리석음이 끼어들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베푸신 은혜를 선용하지 못한 까닭이었죠. 따지고 보면 선악과를 악용한 하와를 탓할 까닭이 궁색해진 참입니다. 악한 의도인 줄 알고 따라간 아담 이후 자범죄의 대가로 치르는 형벌이니 말입니다. 죄인의 피를 물려받은 원죄 때문에 그 속성이 고스란히 유전되었거든요. 비록 중생했을지언정 평생 성화를 지속하는 이유입니다.


심히 부끄러우나 저의 나쁜 운전 습관을 고백합니다. 성격이 급한 탓에 막히는 걸 참기 어려워하는 편이거든요. 길이 훤히 열렸을 때 나도 모르게 과속을 하곤 합니다. 오래전 딱지까지 몇 차례 끊은 적이 있으니까요. 떠올려보면 정말 창피한 일들입니다. 내비게이션을 단 뒤로는 각별히 조심한다고 다짐해도 타고난 성정을 단박에 죽이기는 쉽지 않습디다. 이런 게 바로 죄성이로구나, 매번 추슬러봐도 뿌리 깊이 박혀있는 속성을 무리 없이 다스리는 건 여전히 저의 숙제입니다. 자그만 단체의 책임을 맡고 있을 때였어요. 왜 투명한 회계 처리로 구성원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한 채 적당히 얼버무렸는지 후회가 막급입니다.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만큼 수치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를 내 것인 양 제쳐둔 일입니다. 나중에 정확히 계산하셨습니다. 소스라칠 만큼 감사한 일이었어요. 주님의 자녀이기에 중간결산할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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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진안군 조각공원 조형물

 

유독 반복을 싫어하는 학습 태도로 인해 실패를 거듭한 과거사는 가슴 아픈 기억입니다. 다행히 퇴임하자마자 이어가고 있는 박사과정에서 그 취약점을 보완하느라 애쓰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도달 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실시간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은혜를 깨닫는 게 요체입니다. 교단에 머물며 다소 따분한 느낌이 들었을 때 앞뒤 안 재고 착수한 신학대학원 졸업을 바탕으로 침체에 빠질 틈새를 없애버린 결단은 퍽 잘한 일이었어요. 제 경험칙상 주저 없이 권면할 수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쏟아부을 만한 일거리를 찾으십시오. 출퇴근의 수고를 면제받은 덕분에 더욱 몰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더라고요. 백세시대에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는 즐거움이 제법 쏠쏠합니다. 자신을 사랑할 열정이 남아있는 한 소망은 결코 말라붙지 않으니까요.


돌이켜보매 모두가 예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에는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했고, 난산 끝에 출발한 대학 시절에는 곧 닥쳐올 미래를 대비하지 못한 잘못이 있었어요. 지나고 보니 어렵사리 교단에 섰으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도 있었고, 가르치는 태도의 오만함이나 내용상의 오류에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가장 후회막급한 지점은 끝내 풀지 못한 인간관계입니다. 흔쾌히 양보하고 듬뿍 손해를 보는 데 한참 인색했거든요. 왜 그리 미안하다는 말문이 더뎠는지 모르겠어요. 한마디로 복음의 비밀을 깊이 깨닫기 전 맞닥뜨린 갖가지 사안에 대한 판단력의 문제였습니다. 모쪼록 살면서 걸림돌에 걸리거든 우선순위를 정해 슬기롭게 넘어가되 그때마다 열쇠를 쥐고 계시는 주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굳건한 신앙은 시련이 닥칠 때 오히려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2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17호)에는 ‘죽향재(竹向在)의 주인의식 - 수줍게 들춰낸 편력’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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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크리스천한테 건넨 소식 ‘영혼 구원의 섭리’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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