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죽리, 갑오개혁 뒤 수원군 숙성면... 1914년 대죽동·소죽동 통합

창내리, 조선후기 직산군 언북면... 조선후기 5군영 가운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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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일정씨가 모여 사는 죽1리 방울미(2013)

 

◆ 오성면(梧城面) 죽리(竹里)


갑오개혁 뒤 수원군 숙성면 지역이다. 본래 ‘죽동’, ‘댓골’로 불렀던 것을 1914년 대죽동·소죽동·소겸당리를 통합해 죽리라 했다.


1. 방울: 죽1리의 자연마을. 1914년 이전에는 ‘소겸당리’라 했다. 마을 뒷산이 매의 형국인데 방울이 달린 자리에 마을이 자리를 잡아 유래됐다.

 

2. 소죽동: 죽4리의 자연마을. ‘작은댓골’ ‘고군뱅이’라고도 한다.

 

3. 대죽: 죽3리의 자연지명. ‘대죽골’이라고도 한다.

 

4. 신죽: 죽2리의 자연마을. 한국전쟁 뒤 댓골 옆에 새로 형성돼 ‘새댓골’ 또는 ‘진흥굴(기능골)’이라고 했던 것을 1970년경 분동되면서 ‘신죽’이라 했다.

 

5. 즘말: 죽리의 자연마을. 옹기를 굽던 ‘점말(촌)’의 변음이다.

 

6. 대소골: 종자공급소가 들어서고 마을이 커져 분동되는 과정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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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척지에 형성된 창내리 신창내(2007)

 

◆ 오성면 창내리(倉內里)


조선후기 직산군 언북면 지역이었고 1914년 창내리가 됐다. 조선후기 5군영 가운데 하나였던 수어청 둔전(屯田)의 곡식을 저장했던 창고가 있어 유래됐다.


1. 원창내: 창내1리의 자연마을. 가장 먼저 생긴 마을로 본래는 ‘창안말’이라고 했다.

 

2. 구창내: 창내2리의 자연지명. 분동되면서 원창내 주민들이 옮겨와 살았다고 해 유래된 지명이다.

 

3. 신창내: 창내3리의 자연지명. 가장 늦게 만들어진 마을에서 유래됐다.

 

4. 동창(東倉): 창내4리의 자연지명. 창내리의 동쪽에 새로 형성된 마을에서 유래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15호)에서는 ‘평택시 청북읍 고렴리(古念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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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오성면 죽리·창내리’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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