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17(화)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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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의 무한하신 권능을 체감하는 순간은 전심으로 기도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기도문을 가르쳐주신 이유입니다. 기도야말로 성도의 호흡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들숨과 날숨이 막히면 어떤 생명인들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주기도문에 담긴 신앙고백의 뜻을 되새겨보겠습니다. 곧바로 “하늘에 계신”이라고 수식한 것은 무소부재의 무한성을 뜻합니다. 삼위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우주를 품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불멸하시기에 불가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두려울 만큼 지존하신 존엄성과 초월성을 지니셨으니까요. 우주를 창조, 운행, 섭리, 심판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상은 곧 전지전능이십니다.


“우리 아버지여”는 기도할 대상과 근원을 가리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지 않은 기도는 단순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독백이나 본능적 바람일 뿐입니다. 기도는 피조물인 천지신명이나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단지가 아닌 성부, 성자, 성령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성삼위 하나님이 아니면 단지 사탄이 조종하는 잡신에 불과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름에는 인격과 성품이 깃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가 복음을 선포할 때도 나타나십니다. 주님이 거룩하시기에 성도의 삶은 늘 예배여야 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속히 오기를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분부이십니다.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충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합니다. ‘나라’에 주격조사인 ‘가’ 대신 ‘이’를 붙인 것은 당대 언어 관습이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세상에 이뤄지기까지 순종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기에 감히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거나 편들기를 꾀하는 걸 엄금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옳으시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가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마냥 참지는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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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그날 먹을 만나에 족하라는 말씀입니다. 불필요할 만큼 쌓아두는 탐욕을 경계하십니다. 누구나 불과 내일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나는 참새마저 굶기지 않으시거늘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생명들에게 먹을거리를 주시지 않겠냐는 기도입니다. 양식을 가진 자들의 나눌 책무를 강조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참으로 무서운 질책입니다. 바로 나부터 남의 허물을 용서한 다음 주님께 용서를 구하라는 명령입니다. 죄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영벌로 떨어질 절체절명의 결과를 떠올린다면 당장 실행에 옮길 현안이지요. 남을 용서하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너나없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는 갈수록 악해지는 세상 속에서 갖가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는 뜻입니다. 기도에 게으를 때 마귀는 그 틈새를 노립니다. 신앙생활의 활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기도인 까닭입니다.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도구는 타락을 부추기는 문화입니다. 세상 정욕과 탐심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수시로 엎드려야 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앞의 내용을 요약한 구절입니다. 잠시 악한 것에 한눈을 팔거나 걸려 넘어졌을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천국과 멀어지지 않겠다는 간구입니다. 성도는 지옥행을 예약한 마귀의 세력과 영적으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무시로 기도에 매진할 때 사탄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고, 사악한 올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는 영존하시는 하나님만을 드높여 찬양하는 송영입니다. “대개”는 ‘대략 일반적으로’라기보다는 ‘원칙적으로 말하건대’로 해석하는 게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오직 성삼위 하나님만이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기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을 높이는 일은 지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아멘”은 잘 아시다시피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는 고백입니다. 히브리말로써 그 안에 확실성, 진정성, 충실성, 신뢰성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멘’이라고 말하는 순간 앞에 기도한 내용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시인입니다. ‘진실로’ 동의하고 확신한다는 보증입니다. 모쪼록 주위에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나눌 만한 이들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2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15호)에는 ‘크리스천한테 건넨 소식 - 영혼 구원의 사역’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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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크리스천한테 건넨 소식 ‘영혼 구원의 간구’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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