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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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갈피 속에서 만나는 진리 아닌 주장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불리는 그 불완전한 이름들이 세간에 판을 친다. 그 틈새를 오가며 벌어지는 상대화의 비논리. 하여 해맑게 빛나야할 진실마저 점점 어둡고 칙칙하게 왜곡되어 갈 때. 생활현장에서 수시로 겪는 갖가지 적반하장들. 아부를 밥 먹듯 하고 거짓을 진짜로 포장하며 부지하는 삶. 원칙도 규준도 몽땅 내다버린 채 역겨운 흑백논리에 탐닉하는 논객들. 섬뜩한 양시론과 양비론의 사념. 산다는 걸 이런 아귀다툼쯤으로 치부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나를 아득한 질곡 속으로 몰아넣는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고작 한 줌 흙밖에 안 되는 인간을 두고 극구 전지전능한 신으로 위장하며 살아가는 무신론자들. 그들은 비굴하게도 얼굴에 드러난 불안의 그림자를 언뜻 들키고는 부랴부랴 말꼬리를 엉뚱한 데로 돌리기에 급급하다. 섬기는 자리를 꿰차고 앉아 오히려 군림하려 드는 고위층과 지배계급. 그런 능력 없고 자격 없는 치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이란 영적 일그러짐의 잔해였다. 근원도 모른 채 가없이 떠도는 영혼들. 이를 질책하실 심판자의 진노를 끝내 외면한 채 드러내놓고 탕자이기를 자처하는 무법천지가 이제는 두려울 지경이다.
 
  복음의 진수를 깨달아 안 뒤, 주님께서 내게 값없이 주신 구원의 선물을 생각한다면 범사에 감사할 일밖에는 없을진대 나는 아직도 자족보다는 자긍이 앞서고 겸비보다는 비방을 서두른다. 그 불만족의 군더더기마저 도말할 때 풍부에 놓이거나 비천에 처하거나 자고하지 않을 비책을 간직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원죄를 새까맣게 잊어버린 듯 연신 토설하는 불평의 편린들. 제아무리 곰곰이 고민한들 고매한 인격을 향해 가는 길이 그래서 갈수록 까마득하게 보이는 터다. 그러니 더욱 사랑하시되 끝까지 안위하시는 나의 창조자를 붙들 수밖에.
 
  딱히 그 누구를 겨냥한 투정이라고 속 시원히 밝힐 수도 없는 형편. 어느 한 구석 왠지 당당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나의 이 냉랭한 가슴. 그러면 아니 된다는 현실을 빤히 알면서도 연약한 육신에서 내뿜는 산물이 있다. 욕망의 기대치를 못내 추스르지 못하는 한계. 돌이켜보매 어린 시절 애먼 꾸중을 듣고 자란 뼈아픔이 있었다. 문득 내게 상처를 안긴 이들을 떠올렸다. 피붙이였다. 살갑지는 못할망정 표독할 만치 날카롭던 혓바늘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불행한 조합이었다. 여태껏 그 과거사는 내 곁을 서성거린다. 언제나 나는 지긋지긋한 시제(時制)를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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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음담패설. 나 역시 그래도 좀 낫다는 치들과 뒤섞여 사려 없이 내뱉은 언사가 있었다. 저급한 언어유희를 두고 한때나마 골계와 해학으로 착각했던 나의 치기(稚氣). 뒤돌아보니 겉보기 멀쩡한 사람들의 입술에 놀아난 꼴이었다. 유행이 유행을 구축하는 풍조. 유행은 지나는 바람에 지나지 않다. 유행을 껴안은 군상 중에는 참기 어려운 꼴불견도 있다. 건설적 의견을 도통 존중하지 않는 상사. 대뜸 시류에 편승하며 으스대는 눈빛들. 나 홀로 외쳐본들 메아리 없는 반향일 때. 나는 하염없이 깊고 짙은 슬픔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나의 서글픔이 어디 이뿐이랴! 무지한 유권자를 매번 속여 왔음에도 똑같은 후보에게 다시금 귀중한 표를 팔아먹는 유권자들. 그 정신적 방랑자들의 기다란 행렬에 끼어들어 원치 않는 우격다짐을 엿들을 때. 값싼 표를 긁어모아 여봐란듯이 대한민국국회를 농락하는 자들. 그들에게 줄을 대며 거들먹거리는 정치판의 철면피들이 있어 매번 민심은 왜곡되고 독재는 오랫동안 기승을 부렸다. 아, 사라진 절차적 민주주의는 언제쯤 복원할 수 있을까? 그토록 함량미달의 정치꾼들에게 던지는 의사표시는 언제나 멈출 수 있을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민의의 전당은 정말 요원한 꿈일까?
 
  정작 친절한 도움이 절실할 때 맞닥뜨렸던 거절. 그로 인해 쓸데없이 복잡해지는 절차를 견뎌야 했다. 안하무인격으로 민원인을 대하는 영감님들. 그들의 시계는 여태 조선왕조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거기로 출퇴근하며 부르대는 자들을 보았다. 상관의 위세를 빌려 호가호위하는 말단직. 그 웃기는 작태를 바로잡으려는 어느 민간인의 시도는 당찼다. 이제 그 용기 넘치는 결기를 한데 끌어 모을 시점이다. 역사의 진보란 건 마냥 기다려 주어지는 생필품이 아니기에. 뿌리 깊은 관행과 오만방자한 언행들. 과감히 타파해 마땅할 우리의 부실한 실상이여!
 
■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johash, 이메일: johash@hanmail.net)
 
※ 다음호(361호)에는 조하식 수필가의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세 번째(최종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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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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