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5(수)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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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멍가게 주인의 변함없는 친절. 제각각인 두상에 맞추느라 내공을 들이는 이발소 쥔장. 말과 뜻이 통하는 사람과의 긴 대화. 아무 가식 없는 사랑. 주름살진 촌로(村老)의 질박한 순수. 서로를 향한 다정다감한 배려. 따뜻한 마음과 마음의 충돌. 비올 때 선뜻 동행을 권하는 우산 밑. 따가운 땡볕 아래 조금씩 나누는 키 작은 나무의 그늘. 좁다란 산길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걸음씩 양보하며 등산을 이어갈 때. 그렇게 가파른 정상에 치달아 올라 숨이 턱에 찬 내게 향긋한 귤 한 개를 권하는 손길이 있었다. 고마운 그 느낌을 고이 간직한 나는 마냥 행복하다.
 
  언뜻 가녀린 책자 속에서 발견한 평범한 진리. 불후의 명작을 탐스럽게 읽어 가는 시간. 심연을 건드리는 짙은 감동. 더 나아가 내 자신이 흡사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제법 지적 기지개를 켜고 있다고 느낄 때. 시퍼렇게 살아있는 문제의식. 두려울 만치 점잖게 짚어 가는 문제제기. 날선 검처럼 날카로운 분석비판. 지극히 현실성 있는 대안. 이런 것들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귀감이 그립고, 봉사와 희생으로 승화할 때라야 아름다우리라. 아울러 누구에게든 아프지 않을 만치 매만지는 충고여야 하리라.
 
  이웃끼리 나누는 정겨운 인사. 길가에서 만나는 교양 넘치는 이들. 가령 지저분한 휴지를 줍는 손길이며 조심스레 애완견을 돌보는 산보객. 당당히 나를 드러내면서도 적당히 타인을 의식하는 태도. 이유 있는 자신감. 자신감을 뛰어넘은 겸손함. 하지만 그것들마저 자타를 위한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때. 초행길을 묻는 이에게 베푸는 세심한 안내. 거리에서 부딪히는 밝고 검소한 옷차림. 상쾌한 출근길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비누 향. 집에 들어오기 전 동네 서점에서 발견한 신간. 그 곳에서 마주치는 주인의 미소. 늙수그레한 그이와 주고받는 가벼운 담소…….
 
  곧이어 마주한 저녁 밥상, 시장기에 지친 나머지 순식간에 구수한 된장찌개를 해치워버렸다. 겨우내 밥상머리를 장식해도 지겹지 않은 포기김치. 나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김치 애호가. 사흘 이상 김치볶음밥을 거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언 땅속에서 갓 꺼내 무친 싱싱한 배추겉절이며 무생채. 다디단 고추장에다 노란 고갱이를 한 움큼 찍어먹을 때 나는 한결 융숭히 대접받는 기분이 된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나이 많은 집배원의 거친 손이 건네준 묵직한 소포였다. 그걸 뜯으며 느끼는 설렘. TV에서는 뉴스가 한창이었다. 즐겨보는 사극을 통해 알게 된 옛날. 그 한줄기 지적 충만이 나를 기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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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지 않은 하루일과를 마치고 달려와 엄마 품에 안기는 막내 얼굴이 해맑다. 점잖게 타이르는 소리에 군말 없이 책상 앞에 다가앉는 맏이는 대견스럽다. 두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이윽고 내 눈동자에 들어와 박힐 때. 부모 앞에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털어놓고는 속 시원해 하는 아이들. 그런 자식을 향해 촌각도 소홀함이 없이 대하는 엄마.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일찍이 복음을 받아들인 부부. 늘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근원 있는 영혼들. 이 보배들을 소유한 나는 스스로 든든한 열락(悅樂)에 빠지곤 한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펼쳐지는 계절의 변화. 그 아름다운 사계에서 조물주의 오묘한 섭리를 감지할 때. 그로 말미암아 시와 때를 따라 빚어지는 변화무쌍한 풍경화. 이를테면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 시원한 물놀이며 신나는 얼음지치기. 곱디고운 오색빛깔로 무르익는 오곡백과. 늦가을 추수하며 흘리는 농부의 땀방울.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하. 그런 대자연을 닮은 자신의 일생을 담아 펼치는 화폭. 남을 섬길 줄 아는 자존감(自尊感). 비록 나와는 무관할지라도 같이 아파하는 심성. 나는 내게 모자란 요소들을 주어진 생애 동안 오롯이 채워가고프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나를 기쁘게 하는 청량제가 있다.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익명의 소시민들. 깊숙이 들여다보니 꼬박꼬박 남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후미진 구석까지 챙기며 다가가는 자애로운 발길과 손길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작 자기 자신은 불편을 감내하면서도 흔쾌히 뒤로 한 걸음 물러날 줄을 아는 상식인이었다. 요즘처럼 얽히고설킨 이해타산에 불 보듯 빤한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멋쟁이였다. 이 모두가 다사다난한 일상사에 묻혀 지레 지칠 법한 나를 벌떡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다.
 
■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johash, 이메일: johash@hanmail.net)
 
※ 다음호(359호)에는 조하식 수필가의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첫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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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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