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6(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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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원고는 지난 10월 공동체비전고등학교 학생 및 교직원을 대상으로 특강한 내용입니다. 교명에서 보듯이 기독교 대안학교여서 신앙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의 깊은 양해를 바랍니다.>
 
 공동체비전고등학교. 우리나라에서 이만큼 훌륭한 학교명이 또 있을까요? 기독교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오롯이 섬기는 믿음입니다. 응당 어른을 향한 예의범절, 정직과 감사,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친절과 봉사, 품위 있는 언행심사는 기독청소년의 기본 덕목입니다. 창조신앙이 바로 선 사람에게 나타날 하위 규범이지요. 선행을 쌓아 천국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영혼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으므로 자연스레 선한 행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바로 서면 행실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행함과 믿음의 순서가 뒤바뀐 사람은 자칫 위선의 일종인 공로의식을 표출하기 쉽습니다. 당연히 크리스천 작가는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마치 잘 된 비유하는 글이나 말처럼 언행이 일치해야 합니다. 말하듯 글을 쓰고 쓴 글은 부드럽게 읽혀야 합니다. 뭇 사람을 현혹하는 글이나 수많은 종교(사실은 종교 형태)들이 지향하는 바를 보십시오. 자세히 살펴보면 돈 한번 벌어보자는 마케팅의 극치요, 스스로 만든 우상을 놓고 벌이는 자기 위안입니다. 나아가 자기 학대입니다. 메카를 향한 순례나 3보1배를 비롯한 각종 수행이 그것입니다. 불안한 내세를 극복하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입니다. 본질은 영혼 구원과는 거리가 멉니다. 타종교에서 주장하는 조물주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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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기자의 말처럼 인생은 기껏 칠십이요 팔십이고, 건강하게 100세 시대를 맞았다 한들 하늘나라에서 보면 안개와 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돌아갈 본향이 없는 한 일생은 허무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교 세계를 다룬 글들은 한결같은 주제가 인생무상이거든요. 일평생을 살고 아무것도 아니라면 왜 살아야 합니까? 살 이유가 없잖습니까? 잘못된 종교의 도그마에 갇혀 가치중립을 부르짖는 풍조 자체가 사탄의 궤계입니다. 결단코 진화는 없습니다. 용불용설이요? 그러나 테니스를 치다 길어진 아빠의 오른팔은 아들에게 절대 유전되지 않아요. 빅뱅 또한 있을 수 없지요. 하나님 없이 만들어낸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대폭발이 일어나려면 최초의 힘이 필요하잖아요. 아무것도 없이 저절로 시공이 열릴 수는 없거든요. 과학의 근본원리가 인과법칙인데 우습게도 과학자들이 그걸 깨뜨리고 있잖아요. 해괴한 비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백 번을 양보해 가장 늦게 지음 받은 피조물이 사람이기에 창조세계를 지켜볼 수는 없었으되 만약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생긴 현장을 바라봤다면 아마 빅뱅처럼 보였을 거예요. 그 좋은 머리로 연구해낸 가설이 고작 빅뱅이에요. 우스갯소리로 내가 믿는 창조신앙보다 우연을 믿는 진화의 맹신이 더 큰 것 같아요.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되뇌었던 아인슈타인은 초월적 존재를 인정했거든요. 다만 애석하게도 신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던진 질문 중 하나 ‘신이 우주를 어떻게 만들었나’였고, 다른 하나는 지구를 관통해보고 싶어했다는 겁니다. 첫 번째 답은 태초에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두 번째는 불가능하다는 게 정답이지요. 과연 그다운 발상이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오늘 강의를 정리하겠습니다. 고전은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교과서이고 그 중심에 성경이 있습니다. 읽기는 틈틈이 책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하고, 글쓰기는 일기와 메모를 통해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실천하는 결단은 전적으로 개개인의 몫입니다. 독후감을 쓰고 기행문을 쓴다면 여러분은 이미 필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셈입니다. 그릇의 크기는 각자에게 맡겨진 자유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위임하신 커다란 특권이니까요. 사람은 로봇이 아니어서 엄연히 우주를 말씀으로 지으신 삼위의 하나님을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권리까지 허락하셨거든요. 실로 놀라운 선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심히 두려운 일입니다. 자유 뒤에는 엄중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임무가 끝나면 예외 없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하니까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므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너무나 명백한 진리를 두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끊임없이 소모적인 논쟁을 일삼은 겁니다.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히틀러가 권총 자살로써 스스로 모든 걸 끝냈다면 말이 됩니까? 그래서 영생과 영벌로 나눠지는 사후세계는 당위(當爲)입니다. 늘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께 기도하며 열심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공평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각자가 준비한 만큼 멋지게 들어 쓰십니다. 선한 목적을 갖고 밝은 미래를 향해 힘껏 뛰는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johash, 이메일: johash@hanmail.net)
 
※ 다음호(357호)에는 조하식 수필가의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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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인문 고전 읽기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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