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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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원고는 지난 10월 공동체비전고등학교 학생 및 교직원을 대상으로 특강한 내용입니다. 교명에서 보듯이 기독교 대안학교여서 신앙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의 깊은 양해를 바랍니다.>
 
  인간 군상의 다양한 삶을 고뇌하는 문학은 기실 인류 역사의 궤적입니다. 동시에 그 흔적에 사상의 체계인 철학을 가미해야 합니다. 문학이 인간의 삶이고 역사이고 사상이라면 가능한 한 많이 읽어야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고이래 고전은 그 토대 위에서 생산되어 왔습니다. 수많은 고전을 공들여 읽지 않고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건 그래서입니다. 좋은 글은 단순히 논술 학원을 다녀서 터득하는 기교가 아니라 머리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샘물과 같은 거라는 깨우침입니다. 어떤 주제를 마주하건 최소한의 맥락으로 정리되는 내용조차 미미하다면 뇌를 제아무리 쥐어짠들 막상 횡설수설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마치 단기간에 서둘러 몇 마디 영어회화를 익힌다고 해서 예기치 않은 문답에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으려니와 엄청난 어휘와 복잡한 영어구문을 어떻게 다 꿸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출제자의 의도를 망라한 행간을 죄다 파악하기 어렵다는 원리입니다. 평소 치열하게 읽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일이 긴요합니다. 우리말을 도구로 삼아 차곡차곡 쌓은 배경지식의 뒷받침이 있어야 논술이든 영어든 주어진 상황에 맞춰 제대로 출력할 거리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어느 분야든지 고통스럽게 축적한 밑천이 두둑할 때라야 흔들리지 않고 구상에서 퇴고(推敲)까지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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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다루는 읽기와 쓰기는 국어교과의 이해와 표현 영역에 속합니다. 서로 맞물려 있는데 읽기와 듣기는 이해이고 쓰기와 말하기는 표현에 해당합니다. 쓰면 읽어야 하고 말하면 들어야 하니까요. 그 연장선상에 문학이 존재합니다. 언어를 매체로 이뤄지는 문학예술은 이른바 5대 갈래(장르)의 양상으로 펼쳐져 왔습니다. 그 생성 순서를 짚어볼까요? 차례로 시, 희곡, 소설, 수필, 평론이 나타났습니다. 다른 이름을 붙여볼까요? 서정, 극, 서사, 교술, 비평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운문만 해도 제천의식인 원시종합예술에서 기원한 고대 가요로부터 출발해 어렵게 해석한 향가, 다채로운 고려 가요(여요, 속요, 장가), 면면히 명맥을 이어온 시조, 새로운 신체시를 거쳐 일제강점기 이후 자유시의 형태로 흘러왔습니다. 근래는 행과 연을 파괴한 산문시마저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3장 6구 45자 내외의 시조를 늘려 연시조를 읊어도 복잡다단한 인간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어려워졌습니다. 고로 과도기적인 가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도 모자라 기다란 소설이 출현하였고 그럴듯한 허구(虛構)를 줄곧 서술자가 이끌어가는 데 그만 질린 나머지 솔직담백한 수필이 탄생한 겁니다. 작품 속의 나는 작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거짓으로 고해서는 생명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본 강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하기에 이렇게 무명 수필가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조동일 교수는 작품 외적 자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의 세계화’로 규정한 ‘교술(敎述, 알려주어서 주장하고 어떤 사실을 서술함)’ 개념을 정착시켰습니다.
 
  어떤 글이든 출발선은 문제의식입니다. 저마다 지니고 사는 무의식적 사고를 가리켜 우리는 세계관이라고 부릅니다. 저마다 생활하는 세계를 인식하고 그 의의를 어떻게 평가하며, 그 평가를 바탕으로 어떠한 목적이나 이상을 세워 스스로의 생활을 주재하는가에 대한 주관적인 의의를 말하는 바, 즉 우주의 근원, 진행 과정, 종착 지점을 어떻게 보느냐의 인식입니다. 전적으로 개인의 관점이고 작가 자신의 시각입니다. 저자의 세계관에 따른 인간 세계의 색깔이 다채롭게 채색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장르를 통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관념은 그저 생각에 머물 뿐이어서 적절한 방편을 통해 분출되고 표출해야 하니까요. 자유롭게 갈무리하는 입말과 글말은 그래서 인간 모두에게는 축복입니다. 태어나 엄마로부터 익히는 모국어야말로 모든 학문의 도구로 기능합니다. 동물들한테는 운소(장단, 고저, 강약) 정도의 음향이 있을 뿐 음소(자음과 모음)를 갖춘 음성 언어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천착한 주제는 조목조목 근거를 적시한 분석과 비판을 거쳐 대안을 제시하기에 이릅니다. 작중에서 문학적 해결을 모색하는 게 작가의 임무라면 독자는 감동과 교훈을 담보로 자신에게 적용할 몫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걸 실제 실천에 옮길 때라야 진정한 삶의 의미를 획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행동규범은 늘 고통을 수반하는 해묵은 숙제였습니다. 비평적 관점에서 외재적 효용론을 강조한 대목입니다. 물론 작가에 초점을 맞춘 표현론과 시대를 녹여낸 반영론을 접속하고, 작품만을 들여다본 내재적 절대론을 더해야 합니다.
 
■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johash, 이메일: johash@hanmail.net)
 
※ 다음호(355호)에는 조하식 수필가의 ‘인문 고전 읽기와 글쓰기’ 세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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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인문 고전 읽기와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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