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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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정에 없다던 상가 방문은 자연스러웠다. 전통문화를 접한다는 명분이 일행의 기호와 맞아떨어진 시공. 큼지막한 금은세공품 가게(상호 WALET)였다. 입구에 선보인 작업 현장. 널찍한 매장에는 공산품으로 가득했다. 진열대를 훑어보니 금속제품뿐만 아니라 돌, 나무, 뼈, 상아 등을 조각한 장식물의 전시장. 순진한 나야 곧이곧대로 그걸 모조리 수제품이겠거니 믿는 눈치였지만 이 계통에 밝은 아내는 대번에 전시용이라고 귀띔했다. 이들의 진면목을 알고 나니 싹싹한 한인 사장의 상술이며 상냥한 점원의 태도마저 미심쩍었다. 그날의 압권은 <대장금>이라는 한식집. 이역만리 열대에서 싱싱한 쇠고기를 상추에 싸먹다니 신기했다. 매운 풋고추와 혀끝을 맴도는 독한 마늘까지. 맛깔스런 김치에 발효된 된장을 얹은 건 대박이다. 대형 TV에서 전하는 고국 소식. 거기서 주운 지식은 제주도인의 근사한 술자리 멘트와 섬 전체의 초토화 현안이었다. 다름 아닌 우근민 전 지사의 우매한 정책으로 인해 해안도로를 넘은 중국인의 토지 침탈이 쟁점. 이제는 중턱도로를 넘어 산록도로까지 매입하는 지경이라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오는 길에 가이드가 현지인들이 목숨처럼 차고 다니는 칼을 소재로 장광설을 늘어놓았으나 엷은 귀에 담긴 건 운석을 갈아 만든 칼이 최고품이라는 것. 명칭이 크리스칼인데 부르는 게 값이려니와 저절로 돈이 생길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데 그 본질은 미신이요 죽음이 두려워 영생을 갈망하는 몸짓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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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나무가 있는 길섶 표지에는 가끔 주인이 있다는 공지로 ‘HATI HATI’라고 적어 놨다. 사람의 마음을 일컬어 ‘하띠’라고 하니 ‘하띠 하띠’라고 두 번 되뇌면 조심하라는 말. 영어의 ‘하트’와 엇비슷하거니와 네덜란드어가 라틴어에 뿌리를 두어 그만치 알아듣기가 수월했다. 반복해서 몇 번을 들으니 ‘아빠까바’라는 인사와 ‘슬라마가시’라는 감사의 말이 제법 자연스럽다. 이따금 차창에 비치는 아담한 분묘들. 이슬람은 매장을 주로하고 힌두교나 불교는 화장을 선호하는 문화인데 비해 중국인은 공동묘지를 고집한단다. 모택동이 중국을 토벌하면서 분묘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조치와는 정 반대 양상. 드물기는 하지만 천주교와 기독교는 비석을 세우는 데 치중한단다. 어쨌거나 죄다 조상신을 모시는 미신의 일종이다. 그런데 이곳 의무교육은 중학교까지란다. 캐물으니 도시는 공짜지만 일부 시골은 수익자 부담이랬다. 등교시간이 흥미롭다. 1~2학년 7:00~10:00시, 3학년 11:30, 4~6학년 12:45이니 3교대반이다. 중학교는 지역 사정에 따라 제각기 7:00~13:00. 초등학교서는 코란을 읽을 정도의 아랍어를 가르치지만 그 이상을 강요하지는 않는단다. 학제는 우리와 같은 6-3-3-4년제. 교실당 28~30명이면 되레 우리 실정보다 낫다. 문제는 도농간의 학력차. 그간 졸업시험으로 학교를 배정하다가 내년부터는 지방별 출제로 방침을 바꿨단다. 대학 진학은 본고사가 대세로되 특기자 전형과 기부금 입학을 허용하는 터. 물론 내밀한 뇌물이 빠질 리 없다. 다들 파안대소를 터뜨린 건 인기 있는 고교의 경우 슬쩍 오토바이를 건네고 뒤로 입학한다는 대목이었다.
 
  인도네시아 체류 마지막 날. 내리 사흘을 머문 호텔과 작별할 시각이었다. 떠나기 전 드리는 기도와 말씀 묵상. 변함없는 우리 부부의 일상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호텔 정원을 산책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려니 침대 맡에 설문지가 놓여있었다. 짧은 영어로되 누린 혜택이 고마워 몇 마디 남기고 싶었다. “Hello! Thank you very much. See you again. Christian, Joe & Han from Korea.” 2014.8.16. Royal Ambarrukmo 호텔리어 여러분에게 전한 짧은 메시지였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만나는 차창 밖 경치. 뙈약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고깔모자를 쓰고 밭일에 열중하는 아낙들이 눈에 띄었다. 사탕수수는 언뜻 수수깡보다는 억새와 비슷하다. 끝 날인지라 다들 궁금증이 만발했다. 화제는 인도네시아의 임금 수준. 기술 없이 받는 초임은 고작 10만 원 남짓, 공무원은 평균 25만원인데 비해 교사는 40~50만원을 받는다니 고액 봉급자 군이다. 내친김에 가이드의 수입을 물으니 월평균 55만원을 웃돈단다. 후진국일수록 돌아다니며 돈 버는 직업이 인기라더니 과연 그랬다. 대학 진학률은 생각보다 높은 30% 전후. 하지만 최근 대졸자가 급격이 늘어 10년 전 고졸 대우에도 못 미친다고 했다. 냉큼 전공이 뭐냐고 물으니 주저치 않고 고졸이랬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 당황한 쪽은 오히려 길손들. 퍽 인상적이었다. 우리 중에 누군가 그 입장이었다면 모르긴 해도 그만치 자기 정체를 떳떳이 드러내지는 못했을 테니까. 아무튼 한 점 망설임 없는 그 태도에 적잖이 멋쩍은 표정들이었다. 여기 역시 70만 명 규모의 도시에 무려 1/4이 대학생이라지 않은가?
 
※ 다음호(351호)에는 인도네시아 기행 일곱 번째 이야기 ‘족자카르타 : 왕궁터’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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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인도네시아 기행 ‘족자카르타 : 한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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