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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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이 향한 곳은 <믄듯 사원>과 <빠원 사원>. 앞엣것은 정상 부분이 어디론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는데 그 까닭을 아무도 모른다 했다. 안에 남은 돌부처는 10m 좌불상인 삼존불. 그 주위를 대나무 수풀(‘믄듯’이 대숲이라는 뜻)이 둘러싸고 바로 옆에 250년 된 보리수가 버티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생명줄을 이어가는 뿌리에 주목했다. 언뜻 잔가지를 늘어뜨린 듯 뵈지만 그건 분명 가느다란 뿌리였다. 오랜 세월 저토록 치열하게 자양분을 빨아들이지 않았다면 어찌 4반세기를 견뎌냈으랴. 그렇다고 우중충한 빛깔이며 분위기를 일시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 8세기 말경에 건립된 아담한 빠원 사원을 봐도 거의 모든 사찰이 그렇듯이 그게 그거여서 별반 볼거리는 없다. 곧바로 당도한 곳은 이네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 입구에서 지급하는 치마를 두르고 곧장 뻗은 흙길을 걸으니 돌계단이었다. 여기저기서 던지는 한국인을 향한 추파. 그녀들을 위해 포즈를 취한 건 예상 밖에도 여성 일행이었다. 언덕 위에 지은 승방절. 전체 구도의 도면이 연꽃이라는 해설에 두 귀가 열렸다. 8~10세기에는 거대한 대승불교 유적인 보로부두르 및 광대한 힌두 사원 단지들이 자바 섬 중부에 우후죽순처럼 건립되었다. 거대한 규모를 보아하니 적잖은 인력을 동원할 수밖에는 없었겠다. 가이드는 중3단의 1층을 욕계, 3~6층을 색계, 7~10층을 무색계라고 설명했다. 이상한 건 대승불교에 속하는 보살만 무려 53명이라는 사실. 통상은 12보살을 들먹이거늘 어느새 50명을 넘었나하는 추측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 뇌리에 각인된 게 있었으니 설화의 원형답게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회자되었던 스토리. 전 세계에 퍼져있는 콩쥐팥쥐 얘기처럼. 절정은 부처의 모친인 마야부인을 신격화하려는 시도였다. 듣자니 그녀가 석가모니를 옆구리로 출산했단다. 감히 예수님의 성육신을 흉내 내려는 의도로 비치지만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허구요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조차 모르는 영적 무지에 불과하다. 만다라를 우주의 중심으로 파악하려는 집요한 시도야말로 영적 갈급에 기인한 몸부림이니 말이다. 볼만한 건 회랑에 새겨진 부조. 노천 벽에 부처의 일생과 행적을 섬세하게 그려 놓았다. 저마다 스투파(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하는 곳)에 오른쪽 엄지를 넣고 소원을 비는 모양새. 매년 사월 초파일이면 지구촌의 불교도가 모여 와이삭 축제를 연다는데 목 잘린 부처가 21명이나 된다니 웬일일까? 오랜 세월 갖가지 형상을 만들고 빚어 그것에게 빌어대면서도 정작 내세를 확신하지 못하는 반증이리라. 미얀마의 바간 지역 유적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묶어 세계 3대 유적지라 일컫는데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기네스북 등재)라는 대목에 방점이 찍혔다. 보로부두르가 어떤 뜻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보살이 덕을 쌓는 산’, 혹은 ‘언덕 위의 사원’이란 뜻으로 통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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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무슬림을 부르는 곡소리가 울렸다. 구슬픈 메아리를 들을라치면 흡사 갈 길을 몰라 헤매는 이의 예리성 같기도 하고, 활활 타는 지옥에서 울부짖는 목소리가 연상되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그 광경을 두고 똥꼬 쳐드는 꼴이라며 재밌게 이르집었다. 가관인 건 나오는 길에 부채를 파는 장사치의 행태. 첨에는 20개에 10만원을 부르더니만 나중에는 1/10 가격으로 뚝 떨어지는 걸 보노라니 도대체 인건비가 얼마기에 저리 쌀까 혀를 찼다. 묻은 김에 들른 <빠원 사원>은 작다란 사원. 하지만 가이드는 규모에 상관없이 세계문화유산으로써 손색이 없다고 자랑이다. 소박미와 간결미를 겸비한 사원이라는데 주위에 굵직한 말똥 무더기가 굴러다니는 바람에 경관을 해치고 있었다. 족자로 말하자면 불교사원만 골라 보려고 해도 꼬박 1주일이 걸린다는데 공들일 맘 자체가 없으니 그저 일정표에 있는 사원을 일별한 걸로 족하다. 벼농사만 3기작을 한다는 무논. 아닌 게 아니라 한쪽에선 모내기에 한창이고 다른 쪽에선 탈곡을 진행하는 진기한 광경이 벌어졌다. 축구는 여기서도 인기 종목. 논 대신 풀밭 구장이어서 한껏 이채로웠다. 문득 벼를 벤 논바닥에서 동네 축구에 미쳤던 유년시절이 떠올랐다. 흔해빠진 공 한 개 변변치 않았던 때, 소년들은 지푸라기를 뭉쳐 이리 뛰고 저리 달렸다. 울퉁불퉁한 데서 불거진 그루터기를 걷어차 발목이 삐끗한들 어디 환경호르몬에 찌든 인조잔디구장에 비하랴. 그밖에 열대지방에서 가죽점퍼를 걸치는 걸 보고 갸우뚱했으나 작열하는 태양열을 차단하고 높은 습도를 제어하는 데 효과가 높다는 말에 대번 고개를 끄덕였다. 길가에 나풀거리는 오색기. 가이드는 인도네시아를 깃발의 나라로 지칭했다. 서로 축하할 일이 생기면 늘 깃대를 꽂고 연신 연 날리듯 깃발 휘날리기를 즐긴단다.
 
※ 다음호(350호)에는 인도네시아 기행 여섯 번째 이야기 ‘족자카르타 : 한식집’이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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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인도네시아 기행 ‘족자카르타 : 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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