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6(월)
 
평택문화원 소장사료로 본 황수근 학예연구사의 평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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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으로 유학을 가던 중 굴속에서 하룻밤을 머물다가 갈증을 이기지 못해 무의식중에 해골에 고인 물을 먹었다. 다음날 그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온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 이야기의 배경은 포승읍 원정리에 있는 수도사(경기도 전통사찰 제28)로 추측되고 있다. 신라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원효의 흔적은 평택문화원이 소장하고 있는 대승기신론소기회본(大乘起信論疏記會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택문화원에서는 1922년 목판본으로 발간한 대승기신론소기회본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사료는 대승기신론소대승기신론별기를 합쳐 편찬한 것으로 대승기신론에 대한 원효의 주석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다. 원효는 100여종을 저술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 일부만 전해지고 있으며, 이 중 대승기신론소는 중국의 고승들도 해동소라고 특별히 칭하며 즐겨 인용하였다. 원효 사상의 핵심은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도는 모든 존재에 미치지만, 결국은 하나의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대승기신론소에서 만물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삶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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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원효의 오도성지인 수도사가 왜 평택에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원효는 바다를 통해서 당으로 유학할 계획이었을 것이며, 서라벌에서 당항진으로 가는 교통로로서 평택지역은 당항진 혹은 당항진으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평택지역은 고대부터 육로와 해로가 만나는 지점이었으며 교통의 요지였다. 이는 오늘날에도 평택항과 여러 고속도로가 지나는 등 교통의 요지로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원효의 오도성지인 수도사는 평택지역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주요한 단서이다.
 
황수근 학예연구사는 수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평택교육지원청 우리고장 평택시 교재 감수위원을 지냈으며, 지난 2011년부터 평택문화원 평택향토사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다. 현재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 민간기록조사위원, 경기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평택시사> 집필에 참여한 황 연구사는 본보에 30회에 걸쳐 평택문화원 소장사료로 본 평택이야기를 시민, 독자여러분에게 알기 쉽게 연재할 예정입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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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이야기] 대승기신론소기회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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