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5(일)
 
 人: 사람 인, : 없을 무, : 멀 원, :생각할 려, : 어려울 난, : 이룰 성, : 클 대 : 업 업(사람이 멀리 앞을 내다보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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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는 1910214,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 후 326일까지 40여 일 동안 200여점의 작품을 남겼으나 현재에는 60여점의 작품만이 남아있다.
 
 그는 이 서예작품들을 남기면서 이미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초월하고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걸쳐놓고 글자의 한 획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그 정신력을, 범인(凡人)은 가히 상상할 수도 없을 터이다.
 
 “안응칠 역사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법원과 감옥의 일반관리들이 내 손으로 쓴 글로서 필적을 기념하고자 비단과 종이 수백 장을 사 넣으며 청구하였다. 나는 부득이 자신의 필법이 능하지도 못하고, 또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매일 몇 시간씩 글씨를 썼다라고 밝힌 바와 같이 극도의 겸양과 절제로 조선 선비의 현대적 전형을 나타낸다.
 
 그것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엄정 단아한 글속에 침착 통쾌한 그의 성정 기질이 그대로 녹아나 있어, 오늘의 우리가 그 작품 앞에서면 가슴이 끓어오름을 절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절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대한독립과 동양평화의 염원을 놓지 않았으며, 독립을 보지 못하고 처형되는 순국 전날,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언으로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간절히 당부하였다.
 
 다음은 1910325일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되었던 글이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위하여 3년 동안 해외에서 풍천 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도달치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님이 떠난 지 100여 년,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그가 멀리 앞을 내다보며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깊은 반성으로 조국이 얼마나 소중한지, 국력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깨닫고 먼 앞날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취석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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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 김영식의 화룡점정] 人無遠慮難成大業(인무원려난성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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