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6(월)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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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끔한 주택가. 하지만 일본도 유럽만큼 두루 조형미를 갖춘 경관을 빚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구획을 지어 늘어선 동네를 보면 정갈함이 한껏 깃들었다. 마치 기모노 차림의 정숙한 여인네처럼. 가령 논밭을 가로지르는 농업용 소로(小路)마저 허드레 물건이 널브러져 있는 법은 없다. 한국의 최상급 경작지마저 이보다 앞서지는 못한다. 길가에 키 작은 해바라기로 가득했다. 원래 별 볼 일 없는 풍경이어서 일부러 심었다는데 그냥 봐줄 만했다. 여기까지 와서 온천 얘기를 빠뜨릴 순 없다. 길가에 정말 혼탕이 있느냐는 짓궂은 질문에 가이드는 재치 넘치게 넘겼다. 살아남은 아이누족이 개화하면서 더 이상 흥밋거리는 양산하지 않더라도 나름 독특한 온천문화는 그대로라는 것. 그녀가 알려주는 온천법은 기존 상식을 벗어났다. 처음 3분간은 땀구멍을 열겠다고 들어갔다 나왔다할 것이며, 그 다음은 3분씩 번갈아 입수하되 끝에는 가급적 땀을 닦지 말고 자연스레 말려야 효험을 본다는 팁. 아울러 몸의 때만이 아니라 맘의 땟자국까지 깨끗이 밀어내며 이번 기회에 반드시 수양을 쌓으라는 말은 가슴에 와 닿는다. 아쉽게도 필자는 개인적으로 땀이 많아 뜨거운 물을 선호하지 않는다. 유난히 온천욕을 좋아하는 아내가 내 몫까지 맘껏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첫날밤을 묵은 니세코 힐튼호텔은 대체로 합격점. 방이 넓고 전망이 좋은데다 쾌적했지만 샤워를 트는 스위치가 별나게 생겨 물 낭비(절약형 수도꼭지가 아님)가 심했다. 때마침 열린 동아시아축구대회. 한일전 여자경기(2:1 한국 승리)를 보고서 감사기도를 드리자마자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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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주일. 둘이서 일찌감치 아침 예배를 올렸다. 이어 아내와 나선 산책길. 여기저기 까마귀들이 극성이었다. 듣자니 우리와는 달리 길조랬다. 기실 길조니 흉조니 가늠하는 자체가 미신에 불과하지만 외양부터 섬뜩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바로 옆은 후지산을 빼닮은 요테이산(일명 에조후지, 1,898m 사화산). 스키장을 겸한 골프장이 있었다. 특히 질경이가 많았다. 쑥이 쑥쑥 자라나는 모습이 퍽 이채로웠다. 뷔페는 그만 하면 수준급. 가짓수는 많지 않았으되 입에 맞는 게 여럿이었다. 고소한 쌀밥(아끼바레)에 싱싱한 파인애플을 곁들이니 입맛이 돋는다. 아내가 좋아하는 신선한 우유와 요구르트는 무척이나 부러운 식품. 때마침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국경시비에 휘말려 중국인들이 뜸한 편이어서 이처럼 대우를 받는다는 전언이었다. 워낙 지역이 넓어 자전거보다는 자동차가 대세인 곳. 눈이 얼마나 푸지게 오는지 도로 폭을 알려주는 노랑 빨강 화살표지를 장대 높이 매달아 놓을 정도다. 간간이 가드레일 대신 눈보라를 막아주는 바람막이까지 해놓은 걸 보면 엄청난 적설량이다. 느려터진 650cc의 경차. 급할 것 없다는 듯 줄곧 대형차들을 이끌고 간다. 이처럼 느긋한 건 특유의 민족성이나 속도 제한이 아니라 그럴 만한 큼지막한 사건이 있었단다. 1970년대 마냥 지체하는 앞차를 향해 마구 경적을 울렸는데 격한 입씨름 끝에 몸싸움 벌어지고 끝내 살인을 불렀던 것. 그 뒤부터는 아예 서로 간섭을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단다. 그 본질이 관용인지 무관심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값비싼 눈 축제 뒤 벌이는 눈 조각상 파괴는 자본주의의 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대목. 드높이 가리개를 쳤다가 끝나는 즉시 부숴버리는 운영방침을 고수한단다.
 
  주말인데도 도로는 한산했다. 둘레 43km(백두산 천지 42km), 깊이 1,928m에 이르는 <도야(洞爺)호수>가 목전이었다. 소화천황 시절 2년여에 걸쳐 보리밭이 융기된 끝에 저런 용암산이 되었단다. 대동아전쟁(이른바 제2차 세계대전, 미국은 이를 ‘태평양전쟁’이라고 부름)을 감행하던 와중에 취미삼아 그림을 그리던 우체국장이 어느 날 발견했다니 매일매일 시나브로 변화하는 낌새는 아무나 감지하는 게 아니었나보다. 내친김에 사재를 털어 칼데라호의 기현상을 연구하고 그 축적물을 대학에 기증하고 죽었다는 말에 느끼는 바가 많았다. 이후 그는 70년을 주기로 분화하는 지진을 예측하고 다가올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적잖이 기여했다니 아무튼 일본인의 대비정신은 본받을 만하다. 쇼와신잔에 유슈잔의 절경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물결을 유지하는 건 땅 밑을 흐르는 화산대의 지열 때문이란다. 차가운 유람선에 올랐다. 뱃전에 갈매기 떼가 너울거렸다. 청정한 호수를 끼고 자라나는 화산산의 자태. 여러 차례 연거푸 터지면서 삼각형의 산세를 이뤘다는 말이 신기하게 들렸다. 소개 영상을 통해 흘러나오는 한국어 방송은 그다지 충실하지 않았다. 홋카이도 남서부에 위치한 시코스토야국립공원. 2000년 3월 분연이 치솟아 올라 주위가 온통 화산재에 덮인 데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깔끔하다. 그 상처를 딛고 호숫가를 수놓은 산책로. 그러나 본토의 닛코보다는 뒤쳐지는 풍광이었다.
 
※ 다음호(334호)에서는 ‘홋카이도 기행’ 세 번째 이야기 ‘소화산에서 오누마까지’가 이어집니다. 독자, 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조하식 수필가 프로필
 
<월간에세이>를 거쳐 <한맥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 본보에 6년째 ‘세상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신앙산문집<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을 펴냄. (홈페이지
http://johs.wo.to/, 이메일: joha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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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홋카이도 기행, 니세코에서 도야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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