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1(토)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


  그 저항정신을 본받자는 의도인지 바로 옆 간선도로 건너편에서 자주 시위를 벌인단다. 그러고 보니 물소를 국가의 상징으로 내세운 데는 숨은 뜻이 있었다. 후진을 모른 채 전진만을 고집하는 그 놈의 속성과 일치한다는 것. 반면 공원 나무 밑에는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재밌는 광경은 쌍쌍이 짝을 지어 잔다는 점. 이따금 영상 17도에서 이따금 얼어 죽는 일이 발생한다니 열대는 열대인가보다. 세상천지에 부랑자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이렇듯 무기력한 근성을 떨쳐내지 못하는 한 이들의 앞날은 밝지 않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매춘이 성행하는 문화. 여자 대통령을 둘이나 배출한 여성우위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몸을 파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이면에는 어설픈 신앙이 도사리고 있다. 일찍이 스페인에 의해 천주교를 받아들였건만 진정한 창조신앙을 갖지 못한 까닭이다. 곳곳에 아직도 아기 예수가 자라지 않은 채 마리아 품에 안겨있다.

  에스파냐 양식의 건조물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 당도한 <마닐라 대성당>. 스페인이 지은 번듯한 중세풍의 건조물이어서 무척 정교하고 화려하지만 복음은 온데간데없다. 현존하는 교회건물 가운데 최고(最古)이자 최대여서 수학여행지로 각광을 받는단다. 1578년 필리핀 최초의 주교들을 위해 설립됐으며, 현재는 마닐라의 대주교들이 거주한다는데 한때는 지진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었고, 1863년 또 한 차례 크게 무너져 내렸으나 교인들의 지속적인 재건축으로 오늘날까지 그 면모를 보존했다는 전언이다. 밖에서 본 건축 당시의 디자인과 시대상이 담긴 성인들의 석재 조각술이 훌륭하고, 그 안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로세타(Rosetta) 윈도우가 볼만하지만 정작 여호와를 향한 예배가 사라진 건물이란 그저 천장을 떠받치는 벽돌에 불과하다. 이면도로에는 독재자 마르코스를 포함한 전직 대통령의 동상들을 자랑스레 나열한 품도 색다르다. 반도에서 남북도 모자라 두 패로 갈라진 한국인에게 캐묻노니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온갖 약점을 들춰내 강점까지 사장시켜버리는 어리석음을 언제까지 지속할 참인가? 영웅이 없는 사회와 있는 사회의 혼돈과 정돈. 길은 비좁았으되 이러한 구심점이 있기에 이나마 똑 고르고 후리 미끈한 동선을 유지하는 건 아닌가해서다.

  이어서 찾은 <산티아고 요새>는 ‘파시그’ 강변을 따라 4.5km에 걸쳐 쌓은 성벽. 마닐라 대성당 북쪽 편에 있는데 과거 ‘인트라무스(INTRAMUROS)’로 연결되었던 곳으로 스페인이 구축한 요충지의 잔해를 가리킨단다. 2차 대전시 파괴된 터전을 1950년에야 복구해 아담한 골프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이렇게 중요한 데를 대대적으로 복원하지 않는 바도 의아하지만 오래 묵은 유적지를 골프장으로 개조한 내막도 궁금했다. 돌아온 대답은 필리핀에서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옛날로 돌아가는 데 별반 관심들이 없다는 것. 성벽 위를 걸어보니 비록 고색창연하지는 않았으되 몇 백 년을 거슬러 오르는 느낌이어서 각별했다. 나오다 잠시 차를 멈추고 필리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었던 방을 엿보았다. 창살 틈에 비친 16세기 필리핀 통치자의 근거지들. 그들은 이곳을 ‘성의 내부’라는 뜻을 담아 ‘인트라무로스’라고 일렀다. 당시에는 12개의 교회와 대학, 병원 등이 우뚝 서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예전의 모습이 멀리 달아나버렸다. 시간관계상 스페인풍이 짙은 성 입구에 지은 박물관이랑 그 안뜰에 있다는 바로크양식의 성 어거스틴교회(San Agustin Church, 1571년 시공~1606년 준공)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수차례에 걸친 지진과 태평양 전쟁을 겪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오롯이 버텨주어 일명 ‘기적의 교회’라고 부른단다.

  여기저기 새로운 걸 볼 때마다 메모하는 날 보고 가이드가 대뜸 말을 건넸다. 경험칙상 교사임이 틀림없다고. 하지만 서로들 예를 갖추되 너무 바싹 다가서지 않는다는 게 내 처세의 지론. 여정을 돌아보니 호텔 로비에서 현지인들이 흡연을 하는 바람에 적잖이 불편했고, 치안이 허약해 이리저리 활보하지는 못했을망정 이로써 궁금하던 마닐라를 대충은 섭렵한 셈이다. 상점에 들러 말린 과일을 산 다음 쇠고기를 넣은 두부전골로 점심을 때우고 향한 공항청사. 다시금 봐도 멀끔한 게 연일 엉키던 교통체계와는 딴판이다. 특히나 청사 입구에서 폭발물을 탐지하는 시스템은 우리가 당장 벤치마킹할 대목. 150페소(3,700원 가량)의 공항세를 물고 한 시간을 지체한 끝에 탑승한 기내서는 미리 구입한 생수가 가장 유용했다. 7,000여 개의 섬나라(남한의 세 배 면적)에서 살아가는 1억 인구는 놀랍게도 96%가 말레이인들이라는데, 부디 지난한 시절 우리에게 ‘장충체육관’을 무상으로 지어준 저력을 되살려 힘차게 도약하기를 바란다. <홈페이지 http://johs.wo.to/>


※ 다음호(302호)에는 '성형의 착시현상 <상>' 편이 이어집니다. 시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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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필리핀 기행 '마닐라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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