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며, 조선개국의 으뜸공신인 삼봉 정도전(鄭道傳)의 시문과 글을 모은 《삼봉집》의 목판이다.

 정도전은 공민왕 11년(1360) 진사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고려 때 성균관 박사로 있으면서 정몽주와 함께 명륜당에서 성리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개국일등공신으로 문하시랑찬성사를 거쳐 삼도도총제사, 보문관대학사 등 중요한 직을 겸임하였다. 1396년 이후 명나라가 조선의 내정을 계속 간섭하자 요동수복계획을 세웠으며, 이를 실천하던 중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후의 태종)의 기습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태조 2년(1393)에는 이성계의 조선건국을 찬양하는 〈문덕곡〉, 〈몽금척〉, 〈수보록〉 등을 지어 바치기도 했다. 그의 사상이나 경제와 백성들에 대한 사랑은 조선을 세우는 사상적·이론적·제도적인 밑받침이 되었다. 시호는 ‘문헌’이다.

 삼봉집 목판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도전 사당의 좌측 벽면에 진열되어 있다. 목판의 규격은 길이 56cm에 폭 21cm, 두께 36cm인데 광택은 사주단선에 반엽 10행 1행 20자로 되어 있다. 권지1에서 권지14까지 총 14권으로 되어 있다. 각 권마다 낙질이 많고 이중에서 권지14의 37혈, 38혈은 근래에 새로 각판된 목판이다.

 정도전의 문집이 처음으로 정리된 것은 우왕(禑王) 때로 보인다. 정도전이 이성계와 만나서 혁명을 약속한 직후인 우왕 11년에서 13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권근의 〈삼봉집 서문〉이 전하고 있다. 이때 《삼봉집》에 실린 글은 시문과 유랑시절에 쓴 《학자지남도》, 《팔진삼십육변도보》, 《태을칠십이국지도》 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개국 후 태조 6년(1397) 9월에 정도전의 큰 아들 정진(鄭津)은 원주목사(정3품 외직(外職) 문관으로 보통 병권(兵權)을 지니고 있었음)로 있으면서 부친의 시문 가운데에서 유배시절에 쓴 〈금남잡영〉, 〈금남잡제〉, 그리고 중국에 다녀온 기행문인 〈봉사록〉 등을 합하여 2권의 《삼봉집》을 개간하였다. 정진이 쓴 발문에 따르면, 정도전은 스스로 시문을 기초하지 않고 입으로 읊은 것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베끼게 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받아놓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진은 다른 사람이 소장하고 있는 원고를 모아서 삼봉집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초간본은 성석린이 글을 정선하고, 권근이 비점(批點:시가나 문장 따위를 비평하여 아주 잘된 곳에 찍는 둥근 점)을 찍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이상은 정도전이 살아 있을 때 간행된 것이다. 그가 돌아간 뒤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그의 증손 정문형(鄭文炯)이 세조 11년(1465)에 정진의 삼봉집에다가 《경제문감》, 《조선경국전》, 《불씨잡변(혹은 불씨변설)》, 《심기리》, 《심문천답》을 합하여 6권 6책으로 편성하고 안동부에서 간행하였다. 이때 옛 판본의 없어진 부분이 많이 수정·보완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중간본 삼봉집으로서 당시 영의정이었던 신숙주의 후서(後序)가 들어간 것이다.

 정문형은 그 뒤에도 지방의 주군과 동료들로부터 누락된 시문과 서책을 다시 수집하여, 성종 17년(1486) 겨울에 강원감사로 있으면서 120여 장을 더 내었다. 이때 증보된 것은 시부(詩賦) 1백여 수와 《경제문감별집》인데, 이듬해 앞서 강원도에서 추각한 판목과 안동부의 증판본을 합쳐 모두 8권 8책으로 만들었다. 8책 중 2책(《경제문감》 및 《경제문감별집》)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그 뒤 3백 년이 지난 정조 15년(1791)에 왕은 앞에서 말한 대로 규장각에 명하여 더욱 완벽한 삼봉집을 만들도록 하였다.

 조선 초기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정조는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의 문집과 눌재 양성지(訥齋 梁誠之)의 문집을 간행하면서 경국지문이 들어있는 삼봉집을 함께 간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 때 새로 수집된 것은 〈진법〉과 일부 시문들이며, 정도전의 사실에 대한 기록을 보완하였다. 또한 기존에 누락되었거나 잘못된 글자를 바로잡고, 중복된 내용을 깎아 냈으며, 비점과 주석을 첨가하고, 문집체제에 맞추어 편차를 다시 분류하여 14권 7책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5∼6권에는 중앙집권체제를 강조한 《경제문감》과 7∼8권에는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의 모체가 된 《조선경국전》 그리고 9-10권에는 《불씨잡변》, 《심기리현》, 11∼12권에는 고려 역대왕의 치적을 실은 《경제문감별집》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조 때 간행된 삼봉집도 정도전의 글을 모두 수집한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정토사기〉, 〈칙위발어〉, 〈적격원중흥비〉, 〈학자지남도〉 등은 그 목록만을 적고 본문은 수록하지 못 하였다.
 

 이 책은 대구에서 개간하여 일명 대구본이라고도 하는데, 여러 질을 만들어서 강원도 오대산, 강화도 정족산, 영주의 태백산 그리고 한양의 홍문관 등에 보관하게 하였다. 이중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로 전하는 것이 정족산과 태백산 소장본으로 지금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목판은 글자 새김이 정교하여 인쇄문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 건국이념이기도 한 정도전의 정치, 경제, 철학 사상이 망라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높이 평가된다.

◆ 지정번호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32호 ◆ 지정일자 : 1986년 5월 7일 ◆ 소재지 : 진위면 은산길 80-5(진위면 은산2리 189)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봉화정씨 문헌공파 대종회
◆ 관리자 : 봉화정씨 문헌공파 대종회 ◆ 규모 : 목판 - 길이 56cm, 폭 21cm, 두께 36cm
◆수량 : 14권 228판 <자료제공: 평택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정리 김선우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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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의 문화재] 삼봉집목판(三峰集木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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