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걷고자 하는 목적을 명확히 하고,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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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

본지 전문 필진인 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이 프랑스 국경을 출발해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가는 여정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프랑스 국경에서 산티아고까지는 764km, 피니스테레까지는 852km로 아무리 빨리 걸어도 한 달은 걸어야 하는 고행의 길이다. 김희태 소장의 ‘산티아고 가는 길, 준비 없이 떠나보자!’ 기행문을 4~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말>


■ 성당이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온 산티아고 가는 길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다 보면 마을들을 지나는데, 대부분 마을의 중심에 성당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머물렀던 마을에서 성당을 보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순례길의 여정에서 마을에 도착한 뒤 알베르게(Albergue)가 정해지면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마을을 둘러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때 자연스럽게 성당을 둘러보곤 했는데, 시간이 맞을 경우 가톨릭의 성찬례인 ‘미사(Missa)’ 참여도 가능했다. 물론 미사 전례의 경우 현지어로 진행되지만, 예식은 국내와 별반 다르지 않기에 참여에 큰 무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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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가는 길

 

오히려 생각지 못한 순간도 있었는데,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에 머물 때였다. 마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알베르게 옆 야외 공간에 모였는데, 노을이 지는 모습을 함께 보면서 저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등 작은 축제가 펼쳐졌다. 이때 현지 신부님이 순례자들에게 성체를 나눠주는 등 산티아고 길을 걷던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야외에서 성체를 모셨던 시간이었다.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라는 마을에 도착한 뒤에도 미사가 있다는 이야기에 성당을 찾았다. 이곳 성당은 크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내부 공간은 어느새 순례자들로 가득 찼다. 트리아카스텔라 성당의 미사 전례 중 특이했던 건 전례 중 각 나라별 순례자를 한 명씩 제대 위로 올라오게 해 각국의 언어로 한 구절씩 말하게 한 점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신부님은 순례자들 가운데 한국인이 있냐고 묻는데, 여기서 손들면 대표로 나가야 한다. 이채로운 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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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성당

 

한편, 멜리데(Melide)에 도착한 뒤에도 성당을 찾았는데, 이곳 성당에서 나는 두 가지 행사를 봤다. 막 성당에 도착했을 때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었는데, 성당 문 너머 관을 든 행렬이 막 길을 나서고 있었다. 이후 성당 내부로 들어가 잠시 앉아 있다가 이후 미사에 봤는데, 미사 중 유아 세례를 주고 있었다. 이날 내가 성당에서 본 것은 탄생과 죽음이었다.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태어난다.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지만,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행해지는 유아 사례와 장례식은 전통 혹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지금 내가 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되지는 않을까? 오~ 맙소사! 산티아고 길 위에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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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가도 성당의 문이 열려 있으면 궁금증에 내부도 보곤 했다.

 

■ 부엔 카미노, 당신은 왜 산티아고 길을 걷나요?


부엔 카미노(Buen Camino), 길 위에서 만난 이들을 지나칠 때면 으레 하던 인사였다. 이 말을 풀어보면 ‘좋은 길’ 정도로 번역되는데, 대략 ‘좋은 순례길 되세요!’ 혹은 ‘좋은 여행길 되세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걷고 싶어 하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가고자 하는 목적은 저마다 다양할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어떤 선택에 앞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그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평소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곤 했기에 그 답도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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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시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Bercianos del Real Camino)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야외에서 성체를 모셨던 시간

 

하지만 산티아고로 가는 길의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걷기에도 힘이 들었던 시간으로, 기본적인 욕구인 먹고 자는 것에 신경 써야 했다. 여기에 평소 먹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고, 걷는 것에 비해 먹는 게 많지 않았다. 산티아고에서 먹었던 음식은 대략 아침은 가볍게 과일 종류, 점심은 샌드위치나 미리 준비한 빵 종류, 저녁은 순례자 메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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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아카스텔라 성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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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온 대성당

 

이 중 음식다운 음식은 순례자 메뉴로, 대개 스테이크가 많지만 지역에 따라 생선 혹은 쌀밥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와인 가격이 너무 싸서 식사할 때 혹은 물을 대신해 먹기도 했다. 그렇게 길을 걷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나의 체중은 무려 출발 전과 비교해 12kg이나 감소했다. 여기에 수염도 깎지 않다 보니 외형적인 모습은 여권 속 사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실제 귀국한 뒤 은행을 찾았을 때 은행원이 신분증과 나를 번갈아 보며 본인이 맞는지 재차 물어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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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녘에 바라본 순례자상의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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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Bar)에서 먹었 샌드위치와 콜라

 

경험상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어떤 해답을 얻고자 한다면 초반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루살이 마냥 오늘은 어떤 숙소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지, 내일은 어디까지 걸어야 하는지 등의 모습은 내가 기대한 산티아고 길이 아니었다. 물론 걷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온다면 그만큼 실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길었던 길도 끝이 있기 마련이고, 목적지인 산티아고까지 거리가 점점 줄어 귀국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 되면서부터 내가 걷고자 했던 목적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 짧은 순간의 강렬한 메시지를 위해 그 길을 걸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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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자 메뉴로 맛본 빠에야. 얼마 만에 먹었던 쌀밥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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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 중 초대를 받아 외국인이 만들어 준 그 나라의 음식(사진, 헝가리 순례자가 만들어준 음식)도 먹어볼 수 있다.

 

산티아고를 걷고자 계획하는 분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길이 고민을 해결하거나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티아고 가는 길이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산티아고를 걷고 돌아온 이후 현재의 나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막상 걸을 때는 힘에 겨워 다른 생각 같은 건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던 시간들 역시 지금은 추억이 되어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또한 교훈이 되었다. 때문에 산티아고를 걸었던 길은 내게 분명히 가치가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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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가는 길의 풍경. 걷는 사람뿐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들도 볼 수 있다. 

 

나는 왜 산티아고를 걸었나?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필연적인 운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산티아고 길을 걷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그 소식조차 알지 못한 채 귀국한 뒤에야 소식을 접하고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뿌려야 했던 것도, 산티아고가 인연이 되어 나의 반려자를 찾게 된 것도, 지금 이렇게 그때를 떠올리는 것과 소소한 삶의 작은 변화들이 이루어진 것도 어쩌면 예정된 하나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을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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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 나는 왜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나?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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