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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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가족행복학교 대표,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는 미 의회 연설 중에 기립박수를 18차례나 받았다고 한다. 어떤 내용의 연설이었는지 추측이 되지만 일단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말이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명승부 끝에 우승컵을 차지한 아르헨티나 선수단을 환영하는 국민들의 환호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저들만의 공감을 열광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전쟁의 광풍에 매몰되어 정신을 차리기 어렵더라도 공감하는 동료와 공감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서슴없이 전선으로 달려가게 되리라. 죽음도 불사하면서.


환영 인파 속에 밟히면서 목이 터져라 환호하고 광란의 춤을 추는 것은 세계 모든 나라 국민들이 부러워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지붕 끝에라도 올라가 세상을 얻었다고 외치리라.


공감의 힘을 보지 않는가? 공감할 때 표출되는 에너지를 느끼게 되지 않는가? 이 시대는 그런 공감을 기다리는 공감 시대다. 무엇으로든지 우리를 공감시켜 보라는 것이다.


세계는 이미 절박한 생존 문제에 당면해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구의 생존은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절박한 일에 누군가가 공감을 불러일으켜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과제는 생명과 환경과 평화다. 생명보다 존귀한 것이 없다. 인간의 생명은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다. 자기의 생명만큼 타자의 생명도 모두 존귀한 대상이다. 생명공동체를 지키려는 노력이 국제간 연대하여 지켜나갈 우선순위이다.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지만.


기후로 대표되는 환경문제는 생명이 보존되기 위한 조건이다. 스스로 무덤을 파듯 환경파괴는 자멸로 가는 길이다. 탄소 배출과 쓰레기 양산이 빈부의 격차를 만드는 요소이기 이전에 생존을 헤치는 악이다. 공동의 적을 퇴치하기 위해 손을 맞잡아야 한다.


평화는 여유 있는 자들의 게임 같은 게 아니다. 치열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 가야 하는 결과물이다. 혈투로 경쟁하게 서로 편을 갈라 물고 뜯는다면 우린 공멸할 것이다. 전쟁의 포성이 멎고 어린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공간이 절실하다. 난민들이 제 고향 제 고국으로 돌아가는 환상적인 날이 도래해야 한다. 그래서 평화는 위로부터 오는 선물일지 모른다. 


이를 위해 새해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환대하는 것이다. 가정과 마을과 더 큰 공동체까지 우린 환대문화를 일깨워야 한다. 나그네조차 소홀히 대접하지 않던 옛 문화를 회복하자. 생명을 보존하고 환경을 지키고 평화를 도출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자. 다만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포용하고 인정하자. 서로 이해하고 공감해 보자.


또 하나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이다. 사랑은 물 흐르듯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야 한다. 사랑이 모두가 구하는 최후의 가치다. 성탄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 아닌가. 제한된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공간으로 들어와 체휼하고 결국은 십자가로 사랑을 완성했다. 그 사랑으로 그들을 품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주목할 일은 한국교회 부흥이다. 잠자는 부흥을 깨워야 한다. 부흥은 어느 날 갑자기 도래하지 않는다. 그날이 오도록 몸부림쳐야 한다. 마치 제3의 부흥을 주도했던 1930년대의 부흥을 배워야 한다. 그 무렵 10여 년 동안 전도의 바람이 강하게 일어났고 이성봉을 발탁해 부흥의 불길을 이어가게 했다. 


공감의 신학자 박영범 교수는 그의 저서 《코로나 시대와 공감의 교회》에서 “공감의 교회는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도 꿈과 용기가 현실의 구원으로 실현되는 그 공간을 내어줌으로써 하나님 나라와 행복을 맛본다.”라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공감의 시대로 열어가야 한다. 서해안 유류 유출 시에 보여주었던 공감의 물결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 가정과 교회와 세상을 살리기 위해 공감 시대를 열어가자. 공감하고 이해하면 행동한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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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공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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