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소사천변 사창육고, 도일천변 사창, 대반천변 안중창 설치돼


평택시사.png

▲ 진위현의 사창이 있었던 도일동 상리 사창이 마을(2012)

 

◆ 사창(司倉)


조선시대는 징수한 세곡 일부는 사창(司倉)에 보관해 고을의 운영경비로 사용하고 나머지만 경창(京倉)으로 운송했다. 


진위현은 읍치(邑治)에 동고(東庫) 14칸, 서고(西庫) 5칸, 북고(北庫) 13칸 그리고 관아의 남쪽 도일동 상리마을에 관청고(官廳庫), 통복동 고잔포 부근에 남창, 고을의 서쪽에는 빙고(氷庫)가 있었다.


평택현에는 관아에 읍창이 있었다. 수원부에는 모두 칠창(七倉)이 있었고 하나가 안중읍 용성리 설창에 있었다. 안중읍 황산리 창말과 대반리 창말에는 직산현의 안중창이 있었다. 


양성현에는 사창 육고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구룡동면 창리(현 합정동 롯데마트 일대)에 남창(南倉) 3개가 있었다. 그 외에도 승량동면(포승읍)과 서신리면(청북면) 현곡리 신포에도 양성현의 조창이 있었다. 


사창은 세곡을 모으고, 보관하며, 운송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나루나 포구 근처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소사천변에 설치했던 양성현의 사창육고, 도일천변에 설치한 진위현의 사창, 조수가 드나들던 대반천변에 있었던 직산현의 안중창이 이런 역할을 담당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657호)에서는 ‘ 평택지역의 나루·포구유적’이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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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조선시대 수로 및 해로 교통유적’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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