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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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과연 영국 여왕의 장례식은 달랐다. 화려하고 우아하고 절도 있는 왕실의 전통적인 법도를 따라 거행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례행렬을 보기 위해 나온 백만여 국민들과 전 세계 중계방송을 지켜본 수억 명의 사람들 때문에 그런 건 더구나 아니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의 장례식은 죽음의 품위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장례식은 고인의 일대기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생전의 삶을 소환시켜 준다.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회고하고 그가 남긴 선한 영향력을 추억하는 시간이 되기에.


여왕이 남긴 죽음과 장례식의 의미는 삶과 과정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돌아보게 했다.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니 믿기기 어려운 사실이다.


영국을 상징하는 권좌에 어린 나이에 등극하여 영국과 영연방의 지존으로 권위를 지켰던 여왕. 그도 인간이기에 어찌 왕가의 애환을 겪지 않았겠는가? 제2차 세계대전 시 세계 역사의 물꼬를 틀어쥔 영국 수상과의 갈등이 없었겠는가?


때로는 따뜻한 어미의 이미지와 때로는 냉엄한 정치가의 수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묵묵히 그 길을 걸어야 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영국 국민들은 그들의 여왕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가 얼마나 진지하고 엄숙한 것이었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는 품위를 보게 해주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그의 잠언에서 우리에게 남겨준 권면이 있다. 잔칫집보다 장례식에 가는 자가 지혜롭다고.


여왕의 장례식은 다시 볼 수 없는 이 세기의 마지막 품위 있는 죽음의 절정을 보여 주었다. 인간으로서 존귀함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죽음만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집대성해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는 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죽음을 품위 있게 하려면 살아있을 때 잘 준비해야 한다. 적어도 사람다운 자취를 남겨보자. 다른 사람에게 불의와 불편을 행하지 말자. 소박한 친절과 미소를 잊지 말자. 작은 도움과 배려의 손길을 건네 보자. 누군가의 아픔에 동참하는 기부의 행렬에 서보자.


언젠가 죽음이 문밖에서 노크할 때 ‘아니 벌써’를 외치지 말고 조용히 문을 열어 맞이할 수 있게 준비하며 살아가자. 남에게 대접한 대로 나에게 되돌아올 것을 예견하고 사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다. 품위 있는 죽음은 결국 나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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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죽음과 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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