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백승종 칼럼.jpg
백승종 역사학자, 금요포럼 자문위원

여러분이 오늘 추도식에서 원심창 의사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마땅하고 또한 옳은 일입니다. 여러분께서 원 의사님의 항일투쟁을 기리셨고, 해방된 뒤로 의사께서 추구한 평화통일을 향한 가멸찬 역정을 언급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말씀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면서, 한 사람의 역사가로서 저는 다음의 두 가지 점을 간단히 덧붙이고 싶습니다.


첫째, 원심창 의사는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옛 선비의 길을 추구하셨다는 점입니다. 공자는 말씀하시기를, 나라가 잘못되어 모두가 고통을 받는데 나 혼자만 잘 산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원심창 의사가 사셨던 20세기 초반, 우리는 일제 식민지의 압제에 시달렸습니다. 국가를 잃고 백성들이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고등교육을 통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해 떵떵거리며 살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심창 의사는 고등교육을 받았으되, 한 몸의 부귀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것도 한때만 그렇게 하고 만 것이 아니라 60 평생을 오롯이 그 한길로 매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옛 선비의 길이었습니다. 원 의사께서 스스로 형극의 길을 선택하신 데는 의로운 선비의 전통이 보이지 않는 큰 힘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전국 여러 곳이 다 그러하다고 하지만 특히 우리 평택에는 예부터 의로운 기운이 힘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임진왜란 때로 올라가면, 우리 평택 도일동에서는 원연이란 선비가 포의(布衣)의 몸으로, 분연히 일어나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진력하였습니다. 그분의 형님인 원균 장군은 무수히 많은 공을 세우시고 칠천량에서 순국하실 때까지 나라와 백성을 향한 충의(忠義)의 마음을 버린 적이 한시도 없었습니다. 원심창 의사는 바로 이러한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은 분이십니다. 또, 의사가 생장하던 당시로 말하면, 민세 안재홍 선생을 비롯하여 이 고장에는 애국지사들이 여러분 계셔서 원 의사가 장차 나아갈 애국애족의 길을 훤히 밝히는 등불이 되셨습니다. 평택에 면면히 흐르는 올곧은 선비의 전통이 있어, 원심창 의사처럼 우뚝한 현대사의 인물이 등장하였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원 의사님의 유지(遺志)를 잘 계승한다면 앞으로도 이 땅 평택에서 나라와 온 세상을 이끌어갈 인재들이 잇따라 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둘째, 원심창 의사의 유지(遺志) 곧 세상에 남기신 뜻을 좀 생각해보았습니다. 중년 이후 의사께서 주창하신 평화통일을 향한 의지와 노력에 관하여는 누구나 흔연히 말을 꺼냅니다. 그러나 의사의 사상은 본래 ‘아나키즘’이었는데, 그 점에 관하여는 별로 설명하지 않고 지나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정부주의’라고도 번역되는 그 사상을 우리는 좀 더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리면 너무 번거로워질 것 같아서, 그 현대적 의미를 강조해 볼까 합니다. 한 마디로, 근대의 제국주의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한 것입니다. 근대국가의 부정적인 유산이라면 시민에 대한 과도한 억압과 통제 및 간섭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이를 청산하고 더욱더 개인이 소규모 공동체를 중심으로 자유롭고, 협동적이며, 자치적이고, 평화롭게 살면서 인류적인 차원에서 연대할 수 있기를 소망한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상입니다. 혹자는 아나키즘을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와 같은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20세기 역사를 뒤돌아보면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은 사상적으로 서로 대립하고 갈등한 적이 많았습니다. 공산 독재자들은 누구나 아나키스트를 박해하였습니다. 원심창 의사께서 해방 뒤에 일본에 머물며 재일동포단체인 ‘민단’의 구심점이 된 데도 그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원 의사께서 추구한 ‘아나키스트’의 길은 이미 역사적으로 사명을 다하고 만 것이 아닙니다. 후세가 그 뜻을 받들어, 현실 속에서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傾注)해야 할 ‘미완의 꿈’입니다. 오늘의 추도식이 그런 사실을 우리 가슴에 되새기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제 가슴이 참으로 벅차오릅니다. 오늘 추도식에는 의사의 옛 동지이신 ‘구파 백정기 의사’의 기념사업회에서 두 개의 큰 화환을 보내오셨습니다. 저는 바로 구파 백 선생의 일가입니다. 구파 선생은 원심창 의사와 함께 의거하셨고, 함께 재판을 받고, 똑같이 무기징역형을 받고 복역하다가 순국하신 분입니다. 구파의 유해는 해방 후 효창공원에 묻히셨습니다. 바라건대 원심창 의사의 유해도 효창공원에 함께 자리하셔서, 구파를 비롯한 생전의 동지들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태그

전체댓글 0

  • 1623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칼럼] 원심창 의사를 추도하며 - 제51회 원심창 의사 추모식에서 떠오른 생각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