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시가 있는 풍경.jpg

 

권혁재 시인


이 노래는 아득한 날에 대한 제문이다

문주란이 꽃대를 세워 안부를 묻던 날

진양조장단에서 중중모리장단으로 대답한

오래전 날의 잔인한 주문呪文이다


끌려가면서 벗겨진 신발을 주워 들고

내 온기를 느낀 아내 생각에

내딛는 발걸음이 허방을 밟는 듯

풀려버린 다리


자진모리로 넘어가는 숨소리에

구름이 이불을 한 채 한 채 쌓아 올리는 하늘

아득한 날을 쓸어버리는 폭우는 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비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어설프게 열린 귀를 이제는 닫고

목이 쉬도록 부른 노래에 대해

어떤 내용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묻지 않았다


시가 길어지고 노래가 빨라진 시절에

휘모리장단으로 제의를 갖추며

비명碑銘도 없는 백비白碑 앞에 술잔을 올렸다.



■ 작가 프로필


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투명인간> <고흐의 사람들> 외 저서 <이기적인 시와 이기적인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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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아득한 날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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