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7-0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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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환 금요포럼 회원

평소에 전시회와 지역문화유산에 관심이 많던 필자는 지난 5월 13일(금)에 194차 금요프럼에 참여한 뒤 포럼 회원들과 함께 ‘평택 아카이브’ 사진전과 이충동 충의각, 도일동 원균장군묘역을 차례로 방문했다. 


1. 평택 북부권의 급격한 변화를 담은 ‘평택 아카이브전’


평택시문화재단 주최로 지난 4월 26일부터 6월 5일까지 ‘작가의 시선-평택 아카이브전’이 북부문화회관 전시실에서 개최되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 중에서 필자가 참여한 전시회는 평택문화원 최치선 상임위원과 김윤오 작가가 원(原)서정리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소개하는 2부 ‘기억과 추억 사이’를 주제로 진행된 전시회였다. 방문하려고 벼르고 있던 전시회였는데 특별히 이날은 전시회를 추진한 최치선 상임위원과 김윤오 작가가 직접 회원들을 맞이해주었다.


최치선 상임위원은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기록사진을 촬영하는 시민 김윤오 선생의 서정리 사진을 보고 기획전을 기획했다고 한다. 전시회의 배경은 1970년대~2020년대까지 서정리가 배경이 되고 있다. 내 고향 서정리에 불어 닥친 변화의 바람, 듬성듬성 옛집들이 어느 날 철거되고 정겹던 농촌의 둑길도 끊기고, 논과 밭 사이에 물댄 논이 겨울 추위에 얼면 썰매 타던 기억과 가을날 누런 들판에 메뚜기 잡던 추억들까지.


그리고 1970년부터 하나둘 도시계획이 시작되고 진행되었다. 수도권 전철이 내려오면서 개발이 가속되고, 고덕 국제신도시 개발로 인해 상전벽해가 되었다. 변화되는 고향의 모습을 기억 속으로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1970년 초부터 김윤오 작가는 주변의 풍경들을 틈틈이 사진에 담았다. 서정리, 고덕, 서두물, 갈평, 점촌, 출장소, 새터말, 석정마을, 돌우물, 동녕, 장안마을 등을 사진 속에 담았다. 


설명을 들으면서 사진을 감상하자니 옛 추억이 떠오르면서, 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살짝 울컥하기도 했다. 익숙함에 발전에만 눈이 멀어 옛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고 빠르게 변화하는 평택의 현실과 모습에 대해 느껴볼 수 있는 전시회였다. 평택시민이라면 한 번쯤은 찾아보면 좋을 전시회였다. 


2. 우리가 잊고 지냈던 ‘이충동 충의각’


기분 좋게 전시회장을 나와서 우리가 잊고 지내고 있는 문화재 중 하나인 이충동에 위치한 충의각을 찾았다. 충의각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 정암 조광조(1482~1519)와 삼학사의 한 사람이었던 추담 오달제(1609~1637)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각(閣)이다.


‘조광조·오달제’ 유허비는 이충동 추담마을 4단지 동북쪽의 충의각 안에 있다. 충의각은 이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비각으로 비와 비각을 합해 충의각이라고 칭하며 평택시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됐다. 


충의각을 방문했을 때 아쉬웠던 점은 충의각 앞 도로에는 완충도로가 없는 관계로 잠시 주차를 하고 오며 가며 쉽게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행은 이충동 추담마을 4단지에 주차를 한 후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나 길이 있을 줄 알았으나 철조 펜스에 막혀 있었다. 추담마을 4단지 입구에서 100여 미터 이상을 걸어 들어가야 충의각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안내판도 찾기 어려웠다. 이런 소중한 문화재를 평택시민과 타지역 시민들도 더 많이 찾게 해야 하는데 아쉬움이 컸다. 


3. 역사교육과 힐링의 장소인 ‘도일동 원균 장균 묘역’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도일동 원균 장군 묘역이었다. 원균 장군 묘역은 경기도지정기념물 제57호로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또 한 명의 무신이며, 모역은 원균 장군(1540~1597)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선무공신 1등에 책록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칠천량해전에서 불명예스럽게 전사하여 그의 수많은 업적이 평가 절하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군은 언제나 뜨거운 가슴으로 전쟁터에 가장 먼저 나가는 장군이었다고 한다. 


여러 번 방문을 했으나 넓은 원균 장군 묘역 주변에 팔각정과 의자 같은 쉼터가 없어 아쉬웠고,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앉아서 쉬면서 풍경을 즐길 공간이 부족했다. 또한 저수지 둘레길이 일부만 조성되어 있었으며, 펜스가 너무 높고 도로변 쪽에는 가드레일 넘어 철조망이 있어서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저수지에 연꽃이나 장식물이 있다면 더 풍성한 볼거리가 될 것 같았다.


원군 장군 묘 옆에는 애마총이라는 무덤이 있는데 이 무덤에는 스토리가 있다. 1597년 7월 16일 조선 우군 진영을 공격한 왜군의 대군으로 인해 아군은 후퇴와 혼란을 거듭하였고, 원균 장군은 칠천도로 물러났다. 전의를 상실한 아군의 형세에 왜군은 육지로 상륙한 장군을 공격하여 장군은 왜병에 에워싸여 전사하였다. 장군의 전사를 병영에 있던 장군의 애마가 느끼고는 그가 신었던 신발과 담뱃대를 입에 물고 천리길을 달려 도일리에 있던 원균의 생가에 도착한 후, 신발과 담뱃대를 놓고 크게 울면서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에 그의 집에서는 장군의 죽음을 알게 되고, 영특한 말은 고이 안장되어 그 넋을 달래게 되었다고 하며, 말이 죽은 자리를 ‘울음밭’이라 하였고, 말이 묻힌 무덤을 ‘애마총’이라 하였다. 후일 원균 묘역이 조성될 때 장군묘의 아래 부분에 말 무덤을 새롭게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애마총이라는 스토리텔링만으로도 원균 장군 묘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쉽게 알려지고 찾아올 수 있는 유적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마총의 스토리텔링을 잘 살려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은 말 모양의 석상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오는 6월 4일 <원균 장군 묘역 문화벨트> 조성방안 토론회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이 토론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어 원균 장군 묘역이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찾는 명소가 되길 바란다.


4.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필자는 이번 탐방을 통해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옛것을 기억하고 소중히 가꾸지 않으면 빛나는 미래는 없다. 지역의 문화유산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아이들과 시민들에게 역사교육의 장, 휴식과 재충전의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 되도록 함께 노력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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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탐방 기고] 새롭게 다가온 평택 북부권 역사문화유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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