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시가 있는 풍경.jpg

 

권혁재 시인 


바람도 몰랐다

돌의 구멍에서 한숨이 나오는 곳인지

작은 구멍으로 바다를 들여다보면

오래전 화병으로 죽은 조천 고모의 

한숨이 들려왔다

섬에서 죽음은 매일 밤 용암 속으로

천천히 손을 밀어 넣는 잔혹한 시간

섬의 돌들은 죄다 바람의 길이었다

고모부가 끌려가며 몇 번이나 뒤돌아봤던

화산재 깔린 돌길을 바람이 불어와 위로하였다

고모의 한숨은 새의 울음으로 시작하여

날마다 더 커져 거대한 바람의 길이 되었다

화산석같이 구멍 난 고모의 가슴

구멍을 통과한 바람들은

어디선가 또 다른 가슴을 뚫었다

길 밖으로 밀려난 고모는

몇 십 년째 말을 잃었다

바람도 길을 잃은 채 담벼락에 붙어 있었다

섬의 돌들도 길을 잃고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 작가 프로필


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투명인간> <고흐의 사람들> 외 저서 <이기적인 시와 이기적인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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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바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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