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시인
바람도 몰랐다
돌의 구멍에서 한숨이 나오는 곳인지
작은 구멍으로 바다를 들여다보면
오래전 화병으로 죽은 조천 고모의
한숨이 들려왔다
섬에서 죽음은 매일 밤 용암 속으로
천천히 손을 밀어 넣는 잔혹한 시간
섬의 돌들은 죄다 바람의 길이었다
고모부가 끌려가며 몇 번이나 뒤돌아봤던
화산재 깔린 돌길을 바람이 불어와 위로하였다
고모의 한숨은 새의 울음으로 시작하여
날마다 더 커져 거대한 바람의 길이 되었다
화산석같이 구멍 난 고모의 가슴
구멍을 통과한 바람들은
어디선가 또 다른 가슴을 뚫었다
길 밖으로 밀려난 고모는
몇 십 년째 말을 잃었다
바람도 길을 잃은 채 담벼락에 붙어 있었다
섬의 돌들도 길을 잃고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 작가 프로필
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투명인간> <고흐의 사람들> 외 저서 <이기적인 시와 이기적인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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