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2-08(수)
 

류성룡 선생 징비록 저술... 임진왜란과 같은 참담한 참화 겪지 않기 위해 피로 쓴 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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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

1592년(선조 25)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은 조선의 전기와 후기를 가르는 분기점이 된 사건이다. 표면상으로는 조선과 일본의 싸움으로 보이지만 명나라의 참전으로 사실상 동북아시아를 무대로 한 국제 전쟁이었다. 때문에 중국과 일본에서도 임진왜란은 중요한 역사로 다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임진왜란을 만력조선전쟁(萬曆朝鮮戰爭), 일본은 분로쿠·게이초의 역(文禄·慶長の役)으로 부르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임진년에 왜놈들이 일으킨 난(亂)으로 인식했다. 이는 훗날 후금(청)의 침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오랑캐 호(胡)를 써서 오랑캐들이 일으킨 난이라는 뜻의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과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37)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은 전란이 끝난 뒤에도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 간 패권 경쟁이 벌어졌고, 세키가하라 전투(1600)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하며 정권을 잡았다. 도쿠가와 막부의 시작이었다. 명나라의 경우 임진왜란과 더불어 서북지역에서 보바이의 난(1592), 서남지역에서 양응룡의 난(1597~1600)이 일어났는데, 이를 만력삼대정(萬曆三大征)이라 부른다. 사실상 명나라 멸망의 원인이자 암군으로 평가받는 만력제의 실정과 이로 인한 명나라 국력의 쇠퇴 과정에서 임진왜란이 터졌고, 명나라는 조선으로의 파병을 결정했다. 물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장을 조선으로 국한하려 한 것이지만 조·명연합군이 결성되면서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요동 지역에서의 힘의 공백이 생겼고, 그 결과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합하면서 후금의 건국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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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 옥연정사 원락재(遠樂齋), 징비록이 탄생한 현장이다.


명나라 역시 임진왜란 이후 후금을 제압하고자 시도하나 사르후 전투(1619)에서 패전하며 후금의 서진을 막을 수 없음이 드러났다. 즉 명·청 교체기에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조선의 경우 자국에서 전쟁이 벌어졌기에 전란 이후에 국토가 황폐화되고 신분제가 동요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 바로 이러한 임진왜란 이후 서애 류성룡 선생은 징비록(懲毖錄)을 저술했다. 여기서 징비(懲毖)는 스스로를 징계해 후환을 대비한다는 뜻이다. 징비록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 전후 상황과 조정의 대응 등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다시는 이 같은 참담한 참화를 겪지 않도록 하고자 했기에 징비록을 가리켜 피로 쓴 역사의 교훈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결과 병자호란의 참화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해야 했고, 결국 200여 년 뒤에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징비록은 일본에서 유행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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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성룡 선생이 남긴 징비록(懲毖錄)

 

■ 린지 그레이엄 상원 의원이 브루투스를 언급한 까닭은?


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에 선생님께 “역사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는데, 이때 선생님의 대답은 “역사란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였다. 사전적 의미에서 역사는 사건 그 자체로 지나온 기록을 의미하는데, 독일의 역사학자인 레오폴트 폰 랑케(1795~1886)처럼 있었던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의 개념을 확립하며 역사를 통해 과거 사실을 밝히는 도구로 인식했다. 하지만 역사의 본질적인 의미가 과거 사실을 나열한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역사를 통해 전례를 알 수 있다. 앞서 선생님이 내게 언급해 주신 미래를 보는 거울이란 이런 의미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세계사의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기사를 보면 유럽연합과 미국이 일치단결해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으며, 예상외의 선전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찬사도 쏟아지고 있다. 주 UN 우크라이나 대사가 푸틴에게 “1945년 5월 베를린의 벙커에 있던 남자가 해야 한 일”이라고 독설을 퍼붓고, 미국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 의원이 “러시아에 브루투스가 없냐”는 언급을 하자 러시아에서 푸틴에 대한 암살 요구로 받아들여 반발했다. 여기에 언급된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BC 85~42)는 카이사르를 암살했던 인물로, 셰익스피어의 희극 <줄리어스 시저>에 나온 “브루투스 너마저”로 유명한 인물이다. 또한 베를린 벙커에서 자살한 남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원흉인 아돌프 히틀러(1889~1945)로, 린지 그레이엄 상원 의원이 브루투스를 언급한 건 푸틴을 아돌프 히틀러만큼이나 위험한 인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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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로 쓴 역사의 교훈이라 평가되는 징비록


한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해관계에 따라 단합하지 못했고, 때로는 분열 양상을 보였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강탈할 때 이를 막아내지 못했고, 구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존과 안전을 보장했던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1994)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도 서방은 무기력했다. 물론 이때도 경제 제재를 했지만 지금처럼 단일 대오를 형성한 것이 아니었기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푸틴의 입장에서는 이때의 성공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해도 서방이 개입하지 못한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달랐다. 전쟁 이후 서방은 러시아를 스위프트(SWIFT)에서 퇴출하는 등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발동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및 경제 지원이 쏟아졌다. 반대로 명분도 없는 사실상의 주권 국가에 대한 침공이기에 일부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가 러시아를 비난하고 있으며,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사실상 러시아는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전쟁의 원흉인 푸틴을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시켰던 한 남자, 아돌프 히틀러와 동급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과거 강대국들이 호전적인 히틀러의 등장을 염려했으면서도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뮌헨협정(1938)을 체결하며 체코슬로바키아를 버렸고, 이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히 두 나라의 문제가 아닌 유럽의 문제이자 세계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를 사실 그 자체로 보는 시각을 넘어 교훈의 관점에서 주목된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있을지 신이 아닌 이상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역사를 통해 과거의 전례와 이를 대비할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교훈으로서의 역사는 류성룡 선생이 징비록을 통해 남기고자 했던 “스스로를 징계해 후환을 대비한다.”라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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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의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 징비록(懲毖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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