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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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평택성결교회 원로목사

역시 올림픽은 올림픽이었다. 장엄하고 화려한 축제였다.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린이를 주역으로 등장시키고 최첨단 디지털을 총동원한 개회식과 폐회식이었다. 식전행사마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문화의 꽃을 화사하게 피웠다.


베이징이어서 굳이 거부감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젊은이들이 모여와 힘과 기량과 실력을 겨루었다. 메달권에 들어간 자들의 환희도 아름답지만 메달권 밖에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감동의 스토리가 넘쳐났다. 이때를 위해 땀 흘릴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올림픽은 인류가 쏘아 올린 최대의 하모니가 아닌가?


올림픽은 언제나 세 가지 의미를 던져준다. 첫째로 올림픽의 세계성이다. 세계가 스포츠라는 하나의 도구로 한자리에 모이는 최대 최상의 축제이기 까닭이다. 크고 작은 나라들이 화합의 정신으로 모여와 만나는 한마당이다. 


글로벌 패밀리를 실감하는 자리다. 코로나 팬데믹도 뛰어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구촌 한 가족으로 살아가야 할 실존적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세계가 올림픽처럼 평화와 화합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깨닫게 해준다. 세계는 이런 세계성을 가진 올림픽정신을 꾸준히 구현해 나가야 한다.


우크라이나 선수와 러시아 선수가 경기 후에 얼싸안는 모습은 얼마나 깊은 울림을 주는 감동인가? 경기 도중 쓰러진 다른 나라 선수를 일으켜주는 모습도, 단발의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진 선수를 서로 위로하는 모습도 세계주의 정신이 아닌가?


둘째로 올림픽의 청년성이다. 올림픽은 젊은이들의 축제다. 그들을 위한 향연이다. 사전에 각본이 없는 실제 드라마다. 그들이 세계를 이끄는 주체이며 모든 사람의 대표성을 갖고 있기에 그렇다.


IOC와 개최국 조직위원회가 모든 기획과 준비를 하지만 주체는 청년을 위한 것이다. 그들이 세계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화합이 세계인의 미래이기에 그렇다. 그들의 경쟁이 목표가 아니라 그들의 화합이 진정한 목표다. 그것을 지켜보는 세계는 하나가 된다.


경기는 의외의 드라마이다. 예상한 기록경기도 있지만 숱한 반전과 역전이 있다. 누구도 예견치 못한 새 영웅이 탄생한다. 도전과 모험이 가득하다. 그래서 세계 신기록과 올림픽 신기록이 작성된다. 올림픽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 청년들만이 이루어 내는 기적의 광장이 아닌가?


셋째로 올림픽의 역사성이다. 올림픽은 인류역사의 장이다. 과거의 기록이 남아있고 현재의 기록이 남게 된다. 그리고 미래의 기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세계대전 중에도 올림픽은 개최되었다. 팬데믹 상황에도 텅 빈 관객석을 두고 경기는 열렸다.


올림픽의 발전이 세계 문명의 발전이다. 올림픽은 문화의 제전이다. 개최국들의 문화가 소개되고 감탄을 자아낸다. 숨겨졌던 문화의 재발견이 있다. 문화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다. 세계역사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것이 올림픽이다.


역사는 끊임없는 기록의 역사다. 올림픽은 스포츠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인류화합의 역사요 기록이다. 인간세계에서만 볼 수 있다. 동물의 세계에 이런 역사기록은 없다. 역사를 의식하고 유산을 남기고자 하는 인간의 역사성이 아닌가?


그러기에 올림픽이 주는 의미가 모든 나라, 기업체, 작은 공동체에도 선명하게 나타나길 기대한다. 개인의 삶 속에도 세계성, 청년성, 역사성이 살아있다면 인류는 더 높은 이상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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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칼럼] 올림픽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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